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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02. 2024

나의 장미는 특별하다는 착각


나의 장미가 특별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년 한 유원지를 찾아간다.


그곳은 5월이면 장미정원을 개방하는데, 십 수 가지 종류의 장미를 섹션별로 감상할 수 있다.

나의 특별한 장미도, 그곳에 가면 특별하지 않다.



나의 특별한 장미는 '라빌라코타‘와 '베티 프라이어'의 어느 중간쯤인 것 같다.


나의 장미를 만난 건 2014년 가을이었다. 근무하던 학교에 우연히 핀 장미나무 한그루를 보았다. 오렌지인지 핑크인지 구별이 안 가는 가을장미였다. 왠지 향기를 맡고 싶었다. 처음 맡아보는 장미향이었다. 달큼하고 로맨틱하였다. 게다가 새콤하기까지 했다. 상상 속에 존재하던 순수한 장미의 향이었다. 그래. 배스킨라빈스의 슈팅스타 같았다. 그 장미의 향을 맡고 있노라면, 머릿속에선 무지개가 걸렸다.


그날부터였다. 가을장미를 매년 기다렸고, 매년 조우했다. 녀석은 가시가 꽤 큼지막했는데, 나의 패딩점퍼와 패딩코트의 오른쪽 부분이 항상 찢어졌다. 아마 내가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버릇이 있나 보다. 패딩이라는 패딩의 오른쪽 구석은 죄다 구멍이 날 정도였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내가 꽤나 괴짜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다. 그깟 장미가 뭐라고. 그러나 그대들도 한번 그 장미를 만난다면 모두 나처럼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학교를 옮겼다. 여전히 내 마음속의 장미는 그 녀석 한 그루뿐이었고, 가을이 되어, 그 학교 주변을 지나칠 일 있으면, 쪼르르 달려가 장미를 만나고 왔다. 거참 유난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좋았다. 정말 끝내주는 장미였다. 그래서 상관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학교 공사소식이 들렸다. 수소문한 결과 장미가 뿌리째 뽑혔다는 것이다. 별것 아닌데도 어찌나 섭섭하던지. 그럴 줄 알았으면 가지라도 꺾꽂이를 해놓을걸. 아니야. 토양과 볕이 다르잖아.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났다. 한 유원지에서.

하나의 섹션이 온통 그 녀석이었다.

놀라웠다. 당황스러웠다. 기뻤지만 섭섭했다. 마치 애틋했던 첫사랑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보통의 남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나의 장미가 또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서글펐다.

그렇게 그 유원지에서 한동안을 서성였다. 심지어 향기도 비슷했다. 그 녀석만 못하지만, 그래도 그 향기였다.

그래. 마치 어린 왕자가 장미꽃을 보고 놀랐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꼭 표절판 같다. 하지만 난 장미랑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심부름도 하지 않았고.



이상하게 그 뒤로 장미정원이 개방될 쯤이면, 꼭 한 번씩 방문 한다. 가서 그 녀석들이 잘 있는지, 오늘도 한 구석을 차지자고 만개되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그렇게 눈인사를 하고, 향기를 맡고 돌아온다.

또 배우고, 배우기위해서. 내가 생각한 것들이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는것을 눈으로 코로 확인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그저 장미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한다.

사실은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  '라빌라코타'와 '베티 프라이어'섹션을 가로지르며 수십 번 코를 갖다 댄다. '아니야, 내 장미만은 못해' '아니야 그 장미랑 향은 비슷하지만 색이 어둡잖아' 그러면서 또 고유성과 특별함을 갖다 붙였다 떼었다 한다.


이것은 비단 장미 이야기뿐은 아닐 것이다.

무엇인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은 깨달음을 넘어선 복잡한 감정이라는 것을 당신들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저 운명이라는, 혹은 필연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그 대상을 바라본 적은 없는지, 당신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사실은 그저 평범한 것들인데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착각이라도 괜찮은 특별한 이가 되어본 적은 있는지.

그리고,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당신들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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