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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03. 2024

솔직하고 바보 같은 심장과, 당신


하루에 한 번 꼭 운동을 간다. 

목표는 심박수 135/min 1시간 유지하기. 사실 운동도 아니다. 꼬물꼬물 움직이다 온다. 심박수 135도 사실 귀엽다. 조금만 빨리 달리면 도달할 수 있는 수치다. 그마저 실천을 못하는 내가 선택한 방법이. 돈 내고 레슨 받기이다.


가기 전에는 그렇게 귀찮을 수 없다. 식구들 저녁상을 차려놓으면 바로 차키를 들고 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대와 데스크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가까운 거리를 꾸역꾸역 차를 몰고 가서(운동하러 가는데 차를 몰고 간다 맙소사) 꾸역꾸역 스트레칭을 하고 기본자세로 몸을 푼 뒤, 본격적으로 애플워치의 운동시작 버튼을 누른다. 사실 워치의 운동량 채우러 가는 재미도 있다. 


움직이다 보면 자연히 심박수가 오른다. 심장은 솔직해서 딱 활동하는 만큼 심박수가 올라간다. 조금 운동하다 잠깐 쉬려고 하면 바로 정상심박으로 돌아온다. 이럴 땐 또 어찌나 정확한지.


심장님의 건강과 혈액순환을 위해서 시작한 운동이 점점 재미가 붙고, 자신감이 붙는다.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의 도움으로 운동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감사히도 사심마저 잊게 해 주고, 낮시간동안 겪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씻겨 내려가게 해 준다.

그걸 알기에 심장을 뛰게 하러 간다.

바보 같은 몸은 심장이 뛰면, 무척 신나 한다. 마음도 덩달아 신나 한다. 심장이 뛰었을 뿐인데.


그런데

이 냉철한 심장도 가끔은 정말 바보 같을 때가 있다.

달리지 않았는데도, 마구마구 페달을 밟지도 않았는데도, 모든 것이 멈춰있는데 심장이 뛸 때. 운동할 때는 그렇게 자로 잰 듯이 정확한 녀석이, 이럴 때 보면 한없는 바보다. 


오늘 제자들에게 연락이 왔다. 사실 거의 매일 연락하는 녀석들인데. 오늘은 유난히 다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자기 자신이 별 볼 일 없어 보인다고 고민을 털어놓길래. "그냥 뛰어"라고 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조언대신 심장을 속여보는 건 어떻겠냐고.

졸업하고 나서야 말 잘 듣는 녀석들

금세 또 이런 동영상을 보내왔다. 별것 아닌 짧은 동영상에 아이들의 사랑이 묻어있다.

뛰는 녀석이나 찍는 녀석은 또 왜 짠한데. 그냥 선생님, 하고 한마디 불렀을 뿐인데.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리움에 또 심장이 뛴다. 아이들은 뛰어서 심장이 뛰고, 나는 당신들이 그리워 심장이 뛰고. 


그러고 보면 심장은 참 연약하다.

당신들이 그리워도 요동치고, 당신이 미워도 요동치고, 사랑해도, 슬퍼도 바보 같은 심장은 뛰고 또 뛴다.

이럴 때 보면 심장은 영락없는 F다. 운동할 땐 그렇게 T 같더니 말이다.


괜히 또 심장이 아프다. 이럴땐 애플워치가 T역할을 한다. 움직임이 없는데 심박수에 변동이있다고 칼같이 알려주기는.

겉옷을 챙겨 입고, 산책로 한 바퀴를 돌아야겠다. 

심장이 고장 났을 땐 몸이 심폐소생술을 해 주어야지.

심장이랑 몸이랑 같이 뛰고 나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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