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아주 가방끈이 긴,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생 시절, 생물 2 과목 시험공부를 하면서 도서관에 들락날락거렸었다. 대학원 원서를 보고 너무 놀랐다. 교과서보다 더 깊은 세상이 펼쳐져있었다. 시험기간에 원서를 빌려오면 생각했다.
공부를 오래오래 해야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수능점수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재수를 할 형편이 안됐고, 흔히들 말하는 안전빵으로 점수를 조금 버리고 C대학에 입학했다.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육아휴직 2년을 빼고 16년을 쉼 없이 일해왔다.
고민고민 하다가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난 공부가 좀 더 하고 싶어"
그가 말했다. " 그럼 돈은 내가 더 많이 벌어오면 되겠네!!!"
눈물이 났다. 그 어떤 누구도, 심지어 부모님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였다.
#2
'홀로 서는 것은 고립이 아니라 자유다.'
나에게 자유를 알려준 친구는 날 그렇게 떠났다. 분명한 자유였다. 25년 11월과 12월, 삶의 운영체계를 바꾸면서, 난 성체로 탈각하는 중이다. 행복은 유리와 같다는 걸 알았다. 누굴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굴 만나지 않느냐가 중요한 걸 알았다. 운전대를 잡는 일이 두렵지 않아 졌다. 모든 이들이 날 폄하하고 공격하는 줄 알았던 바보 같은 망상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난 다시 태어났다. 그 친구의 상실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이들에 대한 공감능력은 조금 감소하였다. 아닌 건 아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경계를 세울 줄 알게 된 대신, 조금 외로워졌다. 하지만 더 없는 평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잠잠하고 어두운 파도에 금빛 윤슬이 비치는 것처럼, 고요하고 반짝이는 침묵 같은 날들.
오늘도 난, 새벽부터 사유를 하고, 운동을 가고, 글을 쓴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끝내고, 아이들과 일과를 보낸다. 집 앞의 작은 가게에 들러 우유와 붕어빵을 잔뜩 사와 방학 중인 아이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아마도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유리 같은 행복을 지키는 일은 그렇게 매일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