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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Nov 09. 2023

19호실로 가다

도리스레싱 

책을 다 읽고나서 이 단편들이 고전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현대에 와서야 두각되는 젠더폭력, 가부장제의 무심한 폭력과 그것이 당연시 되는 것들에서 오는 여성들의 무력감, 현대인이 정말 필요한 혼자만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인권뿐 아니라, 노동자들의인권, 그들의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영국대 영국)

이미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신 분이라 들었고 13년 별세하신분이라는 말에 더 놀랐다.


여러 작품중에 맨 마지막에 수록되어있는 '19호실로 가다'를 먼저 읽었다.

자아를 실현하는 화려한 전성기와 대비되는 엄마, 아내의삶. 거기서 오는 공허함과 절망을 그래도 읽고있자니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한살한살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마음의 허기짐은 50년 전에도, 다른나라에서도, 어떤 여성이라도 다 느끼는 감정이구나.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회가 그 여성들의 내면까지 돌볼수는 없구나.


아이를 낳고 나는 얼마나 혼자 이고 싶엇던지.

그저 혼자이고 싶었다. 아무것도 눈에없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공간속에 그저 오롯히 나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수전의 불안함, 당장이라도 무얼 해야할것같은 강박, 아이들과 보모를 보면서 느끼는 박탈감. 왜 인간인 여자들은 이런과정을 거치며 어른이 되어가는가.


'고전'에서 만난 우리의'현실'이 더욱 슬프게 느껴졌던 그런 책.





# 수전과 매슈는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고, 훨씬 더 예의 바르고 부드럽고 애정어린 태도로 서로를 대했다. 이런 것이 인생이었다. 아무리 신중하게 선택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 해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전부가 될수 없다는것. 사실 이런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조차 진부해서 두 사람은 창피해졌다.


# 어느날 밤 매슈가 집에 늦게 돌아와 파티에 갔다가 어떤 아가씨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함께 자고 왔다고 고백한 것 역시 진부했다. 수전은 당연히 그를 용서해 주었다. 다만 용서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이 아니었을 뿐, 이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용서할 수는 없다. 용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하는것이다. 게다가 매슈의 이야긴도 고백은 아니었다. 고백이란 과연 무슨 단어란 말인가?


#  한학기가 끝날 무렵 수전은 자신이 두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이해했다. 첫째, 집에 아이들이 없는 시간 동안, 그녀는 아이들이 항상 옆에 있을 때보다 더욱더 바쁘게 지냈다는 시실에 남몰래 경악하며 당황했다.

둘째. 이제 앞으로는 5주동안 집에 아이들이 가득할 테니 그녀가 혼자 있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5주동안 자유를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벌써부터 바느질과 요리를 하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 그녀는 학기중의 평일에 매일 일곱시간씩 주어지는 자유가 실제로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에 휩싸였다. 수전은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잊지말고 이런저런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을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는 결코 무아의 경지에 빠질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을 내려놓을수 없었다.


# 이방안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여기서 그녀는 네 아이의 어머니, 매슈의 아내, 파크스부인과 소피 트라우브의 고용주인 수전 롤링스가 아니었다. 그녀는 존스 부인이고 혼자였다. 그녀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그녀는 텅 빈 상태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머릿속이 하얀 백지 같았다. 가끔은 아무 말이나 소리내어 말하기도 했다. 아무 의미없는 감탄사 같은것. 그 다음에는 얄팍한 카펫의 꽃무늬나 초록색 새틴 이불의 얼룩에 대해 한마디 논평을 덧붙였다. 하지만 한없이 공상에 잠기며, 아니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고, 방황하고, 깜깜하게 어두워져서 공허함이 피처럼 혈관을 따라 즐겁게 도는 것을 느끼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 내가 칼을 들어 가슴 옆쪽을 잘라 심장을 꺼내서 내버렸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렇게 하고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 우리는 자신의 심장을 꺼내 눈덩이처럼 크리켓 공처럼 서로를 향해 던질 참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피를 흘리는 커다란 상처같은 심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 상처를 받아' 하지만 이런 순간에 사람들은 '내 상처를 받아줘 제발 내 옆구리의 창을 뽑아줘 라고 말하지 않는다. 전혀. 그저 자신의 창을 제거할 수 있을것이라고 기대할 뿐이다.


# 내 살갗에서 신경을 뽑아낼 수 있다면

빨간 그물을 재빨리 바다에 펼쳐 물고기를 잡을 텐데



- 영국대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생각났던 인상깊은 소설


#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돈을 버는게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보고있어. 버스비를 내야하니까. 그래서 내가 어머니한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어머니는

'나도 밖에서 바람좀 쐬고싶어서 그래' 라고 하는거야. 바람을 쐬다니! 망할 공장에서 과자 포장하는 일이나 하면서. 하루저녁 시내에 나가서 좀 즐겁게 놀아도 되잖아. 게다가 그 일을 하면서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는데, 도무지 말이 안돼. 여자들도 사람이야, 안그래?


# 우리는 변하지 않을꺼야 형.


# 학부생들의 신경쇠약 증가에 대한 보고서.

노동계층과 중하층 가정출신으로 장학급을 받는 학생들이 특히 취약하다. 그들에게 학위는 몹시 중요하다. 또한 그들은 낯선 중산층 관습에 적응하느라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들은 기준의 충돌과 문화적 충돌의 희생자이며, 자신의 출신 계급과 새로운 환경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있다.


# 네 이세상은 정상이 아니에요, 얼마나 황당한지 아세요, 우리 아버지는 노동계급의 기둥이에요. 노동당, 노조 등등. 그래서 나는 지난 학기에 내가 어떤 운동에 동참했는지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어요. 아버지는 영국이 유색인종 외국인들을 멋대로 휘두르는걸 지금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 노동계급 아내들은 가정의 감정적인 보루 일 뿐만아니라, 생계또한 책임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 밤에 과자를 포장하는 일 같은걸 하면서. 스스로 즐기기위해서 땀 흘려 노동하는 거야. 몇시간 정도 그 행복한 가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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