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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Nov 02. 2023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오언스 장편소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천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산이 울렸다.

라는 책을 접하고 한참 그들의 문화를 서치하고 공부했던 적이있다. 소설의 깊이에, 그들의 문화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보통 간담이 서늘하거나 염세적인 책들만 읽다가. 이소설을 읽으니, 숨어있던 감정이 퐁퐁 수면으로 올라왔다. 영미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그것들은 너무 헐리웃의 한복판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떤 장면에서는 눈물이나고, 가슴이 아프고, 초조하기도하다.

이틀만에 마지막 장을 덮고 여운을 남겨본다.


첫장에 간단한 지도가 나온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동남부 습지대다. 습지대 판잣집에 홀로사는 카야.

그녀의 주변은 과연 어떤 풍광이었을까? 그녀가 작은 보트를 헤치고 홍합을 따고, 물고기를 낚고, 사랑을 나누고 꿈을 꾼곳은 어떤곳일까, 잠깐 찾아보았다.






해변가와 만나는 습지라니, 아름답고 신비해 보이지만, 막상 해가진뒤의 어둠과 적막은 비단 천국같지는 않았으리라.

습지대에서 평생을 살며 노년을 맞이하는 카야.

그녀의 삶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물론 그녀가 헤쳐나간 어려움을 난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과 역경을 버티며 그녀가 얻은 것들, 자연, 대지와의 소통, 배움, 삶의 충만함, 사랑하는것들에 쌓여 노년을 보내는 모습은 과연 내가 경험할수 있는 영역인지 약간은 슬픈 생각이 든다.


영혼을 나누는, 인생의 모토가 일치하는, 내가 사랑하는것을 그사람도 사랑하여 함께 탐구해나가는, 그사람을 사랑할뿐만 아니라 그사람이 사랑하는 것들도 사랑하고있는, 그래서 운명같은. 테이트라는 사람은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영혼과 영혼이 서로를 알아본다'라는 진부한 말이 사실처럼 쓰여있는 책장을 넘기며, 보통의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과의 갭의 차이를 가늠해본다.

나에게도 그런 인연이 있었을 지언정, 난 아마 알아보지 못했을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설령 그런인연이 스쳐지나갔다 하더라도, 그건 테이트의 모습을 가장한 체이스였을것이리라.


보통의 사람은 테이트와 체이스를 구분하지 못한다. 현명한 카야도 그랬듯이 겉과 속이  같은 인연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사람이 나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 확률은 더 희박해진다.

내가 만났던 체이스들(남녀를 불문하고)이 스쳐 지나간다. 난 과연 그들에게 무엇을 바랐던 걸까. 체이스가 이미 체이스라는걸 알면서도 그를 친구삼았던 카야처럼.




# 몇달이 흘렀다. 남부의 겨울은 온화하게 다가와 슬며시 눌러 앉는다. 담요처럼 포근한 햇살이 카야의 어깨를 감싸고 점점 더 깊은 습지로 유혹했다. 가끔 알수 없는 밤의 소리가 들려오고 코앞에서 내리 꽂힌 번개에 소스라쳐 놀랄 때도 있었지만, 카야가 비틀거리면 언제나 습지의 땅이 붙잡아 주었다. 콕 집어 말할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르르 스며들었다. 아예 사라진건 아니지만 더 깊은데로 파고들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거북이가 젖은 통나무에서 미끄러지듯이 유유히, 좀개구리밥이 카펫처럼 수면을 두껍게 덮고 있어 물빛은 초록으로 물들었고, 녹음이 무성하게 우거진 숲 천장은 에메랄드 터널같았다. 마침내 나무들이 활짝 앞길을 터주자 카야는 드넓은 하늘과 끝이보이지 않는 풀밭, 새 울음소리 가득한 세상으로 스르르 흘러나왔다. 마침내 껍데기를 꺠고 나온 병아리 눈에도 아마 이런 풍경이 보일것이라 생각했다.


# 그녀는 암훌한 늪의 호수로갔네

그곳에서 밤새도록 반딧불이 등불을 벗삼아

하얀 카누를 저엇지

머지않아 나는 그녀의 반딧불이 등불을 볼테고

그녀의 노젓는 소리를 들을테고

우리 삶은 길고 사랑으로 충만하리라

죽음의 발걸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그 처녀를 사이프러스 나무에 숨기리


# 바로 그때 한줄기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쳐 수천장의 노란 시카모어 낙엽이 생명줄을 놓치고 온 하늘에 흐드러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의 낙엽은 추락하지 않는다. 비상한다. 시간을 타고 정처없이 헤맨다. 잎사귀가 날아오를 단 한번의 기회다. 낙엽은 빛을 반사하며 돌품을 타고 소용돌이치고 미끄러지고 파닥거렸다.


# 테이트는 카야의 어깨를 잡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술에 키스했다. 낙엽이 비처럼 내리며 눈송이 처럼 고요히 춤을 추었다. 테이트가 카야의 머리에 붙은 낙엽을 부드럽게 떼어 땅에 떨어뜨렸다. 카야의 심자이 미친듯 뛰었다. 엇나간 가족에게서 카야가 받았던 삐뚤빼뚤한 사랑을 다 합쳐도 이런 느낌을 아닐것같았다. 평생 처음으로 카야의 심장이 한점 모자람 없이 가득 차올랐다.


# 카야는 체이스를 생각해서 웃어주었다. 살면서 해본적 없는 일인데도 곁에 누군가를 두기 위해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했다.


# 카야는 그 후로도 점핑의 가게에서 연료와 생필품을 샀지만 다시는 구호 물품을 받지 않았다. 점핑의 부두를 찾을때마다 카야는 훤히 잘 보이는 창가에 자랑스럽게 자기 책이 놓여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가 딸의 책을 자랑하듯이.


# 다 끝나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할 수 밖에 없구나.

마지막에는 삶을 더욱더 갈구하는 그 충동에

연민밖에 느낄 수 없었다. 안녕


#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갈망했어. 정말로 누군가 내 곁에 머물러줄 거라고, 실제로 친구와 가족을 갖게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어. 하지만 아무도 내 곁에 머물러주지 않았어. 이제서야 그런 상황에 대처하고 나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알았단 말이야.


# 얇고 검은 구름이 지평선에서 나타나더니 그들 쪽으로 다가오다 하늘로 치솟아 날아올랐다. 날카로운 울음소리의 강도와 울림이 점점 커지고 구름이 금세 하늘을 꽉 채우더니 단 한점의 푸른색도 남지 않았다. 수십만 마리의 흰 기러기가 날개를 퍼덕이고 꽥꽥 울어대고 활공하면서 온 세상을 뒤엎엇다.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새떼가 미끄러지며 착륙하기 위해 선회했다. 족히 오십만개는 될법한 하얀 날개들이 똑같은 소리를 내며 펄럭이고, 핑크와 오렌지 빛깔의 발들이 달랑거리더니, 새들은 마치 눈폭풍처럼 착륙하기위해 한꺼먼에 하강했다. 하늘이 텅 비고 축축한 초원이 포슬포슬한 털의 눈보라에 파묻혔다.


# 테이트는 카야의 호소에 배를 대고 카야의 보트옆에 배를 묶었다. 판잣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 자유롭게 넘실거렸다. 카야! 테이트가 외쳤다. 카야!!

그녀가 포치문을 열고 참나무 아래고 나왔다. 길고 하얀 치마에 연하늘색 스웨터 차림이었다. 날개의 색깔. 머리카락이 어깨로 흘러내렸다.

테이트는 카야가 걸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깨를 잡고 가슴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그러고는 다시 밀었다.

사랑해 카야. 알잖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카야 날 사랑해? 한번도 나한테 그말을 한적이없어

언제나 사랑했어. 어렸을때부터, 심지어 내가 기억나지 않을때부터 이미 사랑했어. 카야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나를 봐.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채 망설였다. 카야,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은 이제 끝났다는걸 내가 확실히 알아야겠어. 네가 나를 두려움없이 사랑할 거라는 걸 알아야겠어.

그녀는 얼굴을 들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고, 숲을 지나 무성한 참나무 사이로, 깃털이 깔린 장소로 그를 이끌었다.


# 그들은 첫날 바닷가에서 잤고, 다음날 그는 짐을 챙겨 판잣집으로 들어왔다. 밀물과 썰물이 한번 들어왔다 나간사이 짐을 꾸리고 푸는 일이 다 끝났다. 모래의 생물들이 다 그러하듯이.


# 나하고 결혼해줄래 카야? / 우리 이미 결혼했잖아, 기러기들처럼. 카야가 말했다. / 좋아 난 그거면 돼

아침마다 두사람은 동틀녘에 일어났고, 테이트가 커피를 내리는 사이 카야는 엄마의 낡은 주물 프라이팬에 옥수수를 튀기고 그리츠와 달걀을 젓고 그러다 보면 아침해가 부드럽게 호소위로 떠올랐다. 안개속에서 황새 한 마리가 한쪽 다리로 포즈를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강어귀를 순항하고 물길을 헤치고 좁은 냇물을 타고 미끄러지며 깃털과 아메바를 채집했다.

저녁이면 카야의 낡은 보트로 해가 저물때까지 표류하다 달빛을 받으며 나체로 헤엄치거나 서늘한 고사리를 침대삼아 사랑을 나누었다.


# 어맨다 해밀턴은 카야였다. 카야가 그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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