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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Nov 28. 2023

버티는 삶에 관하여 - 허지웅

냉소주의와 낙관주의.

많은것들이 변하였다.

막 끓인 순두부 찌개의 두부처럼, 입김을 호호 불어서 삼켜야하는 순두부찌개의 계란처럼,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살아가기 편한 냉소주의대신, 볕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저 방관하며 지켜보던 가느다란 실눈대신, 연민의 시선을 얻었다. 묵묵부답의 비소대신, 당신과의 진심어린 대화를 택하게되었다. 

간신히 음지에서 양지로 발을 뻗은 나에게, 이 책은 조금 불편하였다.

분명히 허지웅작가의 전편 두권의 책을 읽었을 때는 조금 달랐었다. 그에게도 연민이있고, 살고자하는 욕망이있고, 냉소주의를 벗어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면, 이번책은 다르다. 안타깝게도, 냉소와 염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글처럼 포장한 냉소 그 자체의 글들이었다. 

날카롭다 못해 분석적이고 정치색이있는 글들은, 읽는것만으로도 피곤했다. 연민을, 진심을 논하면서도 글에는 솔직한 작가의 냉소주의가 한가득 묻어있다.

당신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건강한 책이 되어주지 못했다.

다음 도서는, 좀더 밝은 제목의 책을 의식적으로 고르도록 해야지.




# 타인의 순수함과 절박함이 나보다 덜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절대악과 절대선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정하며 어느 한 편에만 서면 명쾌해질것이라 착각하지 말되, 마음속에서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가지 버팁시다. 우리는 지상과제는 성공이나 이기는 것이 아닌 끝까지 버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 나는 이미 오래전 가족의 신화에 대해 모든 신뢰를 잃었다. 그보다 우리는 서로를 가족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는 방법을 더디게 배워왔다.


# 상처는 상처이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 변명을 위한 핑곗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 하지만 방 한가운데 거대한 나무 뿌리처럼 기둥하나가 서있을꺼야, 라는 말 따윈 들어본 적이 없다. 여러모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내가 니 에미다 라고 말해놓고 아차, 싶은 다스베이더의 심정이다. 여기서 자려면 복부에 구멍을 만들든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기둥을 안고  자든지 해야겠다. 


#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주변 세계를 향한 애정을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 너무 많은 비관과 냉소는, 때로는 막연하고 뜨거운 주관보다도 되레 진실을 더욱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이 글을 읽을 여러분은 부디 나보다 나은 미감과 연민을 가지고 세상의 진심들과 겨루어주길 바란다.


# 모든 노인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지만, 시간의 녹을 먹은 노인들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울수 있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 한번 실추된 누군가의 명예는 결코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일들은 대개,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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