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동생 사이에 껴서 비교도 당하고 놀림도 받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자존감을 갉아먹은 탓인지,
약한 멘탈 탓인지
(정확한 이유가 뭐건 간에)
어릴 때부터 솔직하지 못했다.
거짓말하는 데 능했다기보다, 마음을 숨기는 데 탁월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에는 합창부에 참여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 못해 친구들 뒤에서 발만 동동 굴렸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먼저 챙기느라 굳이 맛있다 생각지 않은 음식도 맛있다, 딱히 가고 싶다 생각지 않은 곳도 가고 싶다, 그렇게 가식을 떨었다.
여전히 사정은 마찬가지.
함께 일하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느라 속마음은 저 밑에 숨겨두고 이거 좋아 보이네요, 어머 그래요?, 그거 괜찮다, 부러워요, 궁금해요를 반복한다. 물론 정말 좋아 보일 때도 있고 진짜 부럽거나 궁금해서 그렇게 말한 적도 있지만, ‘그런 말을 내뱉을 때마다’ ‘언제나 늘’이었던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이런 정도는 하고 산다,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좋은 걸 좋다고 말하지 못할 때다. 관심 없는 걸 관심 있는 척하는 일은 사실 쉽다.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순간도 종종 있고.
그런데 좋은 걸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더 나아가 사람들 앞에서 싫다고 단정 지어 버리는 일은 참 비겁한 행동이지 않나. 알면서도 고치는 게 쉽지 않다.
그렇게 늘 혼자 고립되고 고민하기를 반복하면서도 언제나 ‘싫다고’ 말해버린다. 간절해 보이기
싫어서 상처 받기 싫어서다.
솔직하지 못하면 솔직하지 못한 대로 상처와 후회가 남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헛헛해진다. 그런데도 이 비겁한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다.
성격이 팔자란 우스갯소리가 괜히 생긴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