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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 Jul 02. 2016

열무김치와 흰머리

처음으로 엄마를 느껴보았다

몇 주 전 주말, 고향에 들렀다.

어여쁜 조카랑 영화도 보았고 엄마는 맛깔난 열무김치를 새로 만들어 내 손에 들려주었다.


"아직 덜 익었으니 일주일 있다 익으면 먹어라"


일주일이 뭐야... 이주일도 훌쩍 지난 어느 날 밤, 출출해 라면을 끓여 먹는데 열무김치 생각이 났다.


그릇에 담지도 않고 비닐봉지채 그대로 열어 냠냠 맛있게.

아주 잘 익은 열무김치를 참 맛있게 먹다가, 젓가락에 함께 걸려있는 흰머리를 보았다.


우리 엄마 흰머리.


주말에 잠깐 내려와 이틀 겨우 쉬고 서울 올라가는 딸한테 밑반찬이라도 해준다고 이것저것 바쁘게

만들어주다가 들어간 흰머리였다.


어렸을 땐 밥을 먹다가 엄마 머리카락이 나오면 버럭 짜증을 내기 바빴다.

"엄마! 머리카락 나왔잖아~~ 더럽게!"

고약하게 성을 내고는 밥숟가락을 놓을 때도 많았는데.


열무김치에 붙어 있는 흰머리는 이상하게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제일 먼저는, 음식 속의 머리카락이 이제는 검지 않고 희다는 사실에

두 번째로는, 이제 나도 이런 사소한 문제에 짜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짠해질 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에

세 번째로는,  흰머리 성성한 우리 엄마가 아직도 서른 넘은 딸을 챙겨주고 있구나, 하는 사실에

 

라면을 먹다가 울컥.

눈물까지는 아니어도 괜히 목이 멨다.


열무김치가 그득히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엄마의 흔적이 또 있을까, 뒤적뒤적. 그러다가 한 점을 집어 입 속에 넣었다.

씹는 내내 처음으로 엄마를 느껴보았다.


지금까지 엄마의 반찬을 수천수만 번은 먹어도 보고 받아도 보았지만, 엄마의 나이 듦과 그 애잔함을 헤아려본 적은 없었다. 말치레 겉치레야 수없이 해온 나지만서도.

평소처럼 엄마가 해준 반찬을 먹었고, 단지 머리카락이 나온 것일 뿐인데. 이상하다.  


참말 나이가 먹긴 먹었나 보다.

엄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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