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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 Aug 18. 2016

두 번째 퇴사

편안하고 싶어 졌다

두 번째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다. 올해 들어 두 번째다. 

8월 말까지 일을 하고 나면 이제 명함도 직함도 바이 바이.

나이의 굴레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생각지 않기로 했다.


물론,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불황의 시대에, 어마어마한 취업난의 시대에 갈 곳을 정하지 않고 퇴사를 하는 패기. 

난 참, 놀라울 정도로 대책이 없는 사람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부장에게 이곳을 떠나겠노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편안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이, 그게 뭐냐’고 면박할 사람도 있을 테지. 그렇다면 좀 섭섭한 일이다. 요 몇 달간의 내게는 가장 간절했던 문제다.


아침에 출근하면 옆 동료에게 인사한다. “어제 몇 시에 퇴근했어?”

점심을 먹고 동료와 수다를 나눈다. “오늘은 몇 시까지 할라구?”

퇴근 시간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다. “야근해?”


이런 대화는 그만. 


클라이언트가 묻는다. “일정 어떻게 잡으실 거예요?” “기획안 수정은 언제 되나요?” “원고 며칠까지 주실 수 있어요?” “pdf 작업물은 언제 받을 수 있나요?”

내가 대답한다. “최대한 빨리 드릴게요.” 


이제 이런 대화도 그만.


누군가는 말한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받치는 소리를 하는구나. 사는 게 다 그렇지. 누구나 한쪽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산단다. 네 나이가 몇인데. 성실하게 돈 모아서 노후 준비할 생각은 안 하니. 어쩌구저쩌구.


그래, 나는 참는 게 안 되는 사람이다. 

참을 인자 셋에 살인은 면할지 몰라도, 당장 내가 화병에 걸려 죽는다.

견디면 영광이 오는 게 아니라, 병이 온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자꾸 잊게 되는 이 치열한 노동의 현장에서, 마치 당연하다는 듯 모두가 기계처럼 변하는 비극의 무대에서, 지금은 그저 한 발 물러나고 싶을 뿐이다.   


그래, 나는 정말 편안해지고 싶다.



예전에 <카모메 식당의 여자들>이란 책을 읽었다. 5년 전이었던가. 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인데, 그 당시에도 나는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니 그 책을 샀겠지.

책 속의 여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누군가는 결혼을 이야기하고, 다른 누군가는 성공과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전혀 다른 길에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찾은 여자들. 


잡지 에디터가 카페 주인으로, 교사가 인디 뮤지션으로, 패션 디자이너가 동화 작가로. 그녀들의 골목 모퉁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5년 전부터 지금 이 순간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보장된 매달의 급여를 포기하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    


클라이언트의 구미에 맞게 기획하고 취재하고 글을 쓰는 일은 이제 숨이 막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분간은 이런 것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 는 생각이다. 9월부터는 온전한 백수. 그녀들처럼 완벽하게 변할 수 없다 해도, 최소 1년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볼 작정이다. 


요즘은 구직 사이트에서 카페 매니저 같은 일자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해외 이민을 검색해보기도 한다. 1년 동안 일본에 가서 ‘프리타(フリーター, 후리타)’ 생활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걸 책으로 써보는 거다.


제주도에서 1년만 살다 올까. 아니면 내 고향 강원도에서 안식년을 가져볼까. 플라멩코를 배워볼까. 영어학원엘 다시 다닐까.


별의별 계획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조금 막막하긴 해도, 어디로든 열려 있는 나의 선택이 마냥 불안하지만은 않다.

‘이 시간’을 위한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단순하고 조화롭게. 강물결처럼 잔잔하게. 그러나 마음을 다해서.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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