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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 Aug 30. 2016

나쁜 상상

이건 나쁜 글이다


가끔 나쁜 상상을 한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굴러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고 다리에는 피가 철철 흐르는 상상.

무서웠다. 더 조심히, 천천히 내려갔다.  


뮤지컬을 보는데 공중에 매달린 뮤지컬 배우가 무대 위로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관객들은 놀라고 다급한 안내 멘트가 이어진 후 공연장의 불이 꺼지는 상상. 

덕분에 좋아하는 주인공의 넘버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영화를 보는데 건물이 무너지는 상상을 했다. 

다들 먼저 살겠다고 서로의 머리채를 잡으며 아우성치는 상상.

영화를 보다 말고 나도 모르게 비상구를 찾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나의 등을 미는 상상을 했다. 있는 힘껏.

폭발적인 힘에 놀란 나는 도로 한가운데로 나자빠지고 눈 앞에서 자동차와 부딪히는 상상.

닭살이 돋아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지하철역 출구를 이용했다. 



상사와 회의를 하는데, 연신 아는 척 거들먹거리는 이 인간을 향해 침을 뱉는 상상을 했다.

나선형의 침이 입술을 뚫고 저 썩은 눈빛을 향해 맹렬히 날아가는 상상.

급기야는 그 볼썽사나운 미간에 척 하고 달라붙어, 입을 굳게 하고 몸을 얼게 하는 상상.


상사를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상사도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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