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하였으나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
(*참고로 위 사진은 아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장소로, 글의 이미지로 활용하기 위해 찍은 사진일 뿐이다. 번호 주의)
한 달 전, 사주를 보았다.
역 근처에 천막 하나, 책상 하나, 간이 의자 몇 개 조촐하게 차려놓고 한 사람의 인생을 3만 원에 풀어주는 그런 곳에서.
직장 동료들과 오랜만에 만나, 맥주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충동적으로 들른 곳이었다.
번화한 거리의 지하철역에 자리를 잡은 사주 집이란, 아마도 지나가는 행인의 충동과 흥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곳인지도 모른다.
귀에 솔깃한 이야기들을 어쩜 그리도 구색에 딱딱 맞춰 능청스럽게 뱉어내는지.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일수록 사주에 기대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직장에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남자 보는 눈이 없으며,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일을 하시게.
연고지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겠군.
물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좋아. 그 물이란 바다를 건너 외국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네.
올해 창업과 스카우트, 남자의 복이 들어와 있다네.
그러나 결혼은 될 수 있으면 늦게 하시게.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을수록 좋다네.
알려준 것은 생년월일시가 전부인데 사주란 신기하구나.
올해 퇴사만 몇 번이었던가, 그걸 귀신같이 알아보다니. 1년 정도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며 단순하게 살고 싶었던 내 마음까지 읽히는 것인가.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내 마음은 무엇이 되는가.
사주란 참말 신기하다.
보기 전의 결심과 보고 난 후의 결심이 분명히 달라지니까.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게 되니 말이다.
나 자신보다는 타인의 말에 내 인생을 맡기고 싶어 진다.
충동과 흥분감을 안고 달려갔던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족쇄를 차 버린 기분이었다. 개운했지만 반대로 자유롭지 못했다. 머릿속에선 사주의 내용만이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될 뿐이었다. 며칠은 그랬던 것 같다.
특히 믿고 싶은 것일수록 더 많이, 오래 곱씹었다.
나보다 내 인생을 더 잘 아는 사주라니. 일종의 '바넘 효과'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주를 좋다 나쁘다 결정할 수는 없다. 보고 나니 족쇄가 되었지만, 그 족쇄는 또 다른 의미에서 확신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스스로도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는 어떤 길 앞에, 어마 무시한 제트엔진을 달아주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주 덕분에 지금의 내가, 제주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바넘 효과: 성격에 대한 보편적인 묘사들이 자신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