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a Nov 19. 2016

지금 2

어떤 계획에 대하여 


·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 평지가 아닌 중산간 지방 어디쯤.      


· 저녁 6시만 되어도 주위가 온통 캄캄하다. 


· 날씨가 이보다 더 변덕스러울 수 없다. 해가 쨍쨍하다가도 장대비가 막 쏟아붓고, 내내 흐리다가도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여름처럼 더워진다. 아직도 코트를 입지 않고 다닌다.


· 자동차 없이는 편의점에도 쉽게 갈 수 없다. 면허증은 있으나 운전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게 함정이다. 


· 간단한 사진과 글귀 작업을 해주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 제주 생활? 간단하지만은 않다. 제주 이민을 고민하는 자에게는 진심으로 다시 생각해보라, 고 얘기하고 싶다.


· 아름다운 풍광만을 보며 살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이곳도 꽤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사람과 부딪치는 일은 어디든 녹록지 않다.


· 돈을 보따리 채 갖고 오는 게 아니라면, 어찌 됐든 벌어야 하므로 이런 일들은 감수해야 한다. 


· 서울에서처럼 큰 압박을 받는 일은 없다. 누군가의 전화나 카톡 때문에 심장 떨릴 일은 없으니, 정말 다행이다. 


· 자유롭게 살면 사는 대로, 그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


· 인간이란, 영원히 그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


· 캄캄한 어둠 속에 있다 보면, 가끔 서울의 화려한 불빛이 그리워진다. 지겨웠던 서울이 그리워지는 것. 한편으론 긍정적인 변화다.


· 내가 하던 일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이 또한 내 몸과 마음에는 긍정적인 변화다.


· 한동안은 자주 가던 극장도 그립고 전시회, 뮤지컬도 그리워 엄청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 하지만, 당장 서울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 처음 마음가짐대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1년을 보낼 생각이다. 그동안 즐겨왔던 것들보다, 미처 누리지 못한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할 시간이다.


·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처음 그렸던 어떤 그림과 꽤 비슷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 자연스럽게 태연하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원하던 그림이 내 시간으로 스며들었다. 진짜 그렇게 됐다.


· 누구도 쉽게 가지지 못하는 시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 이 시간을 근사한 책 한 권으로 엮어도 좋겠지. 200부 정도 소박하게 찍어 독립서점에 뿌려보면 어떨까.


· 사방이 시커먼 산중에서, 가끔 도시의 불빛을 그리워하며,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이 차가운 산 공기와 안개 낀 아침을 사랑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斷想] 브런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