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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 Mar 13. 2016

조카크레파스

사느라 욕보는 우리 

'이런, 조카크레파스...' 


가끔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짜증이 날 때 내뱉는 말이다.

적나라하게 욕을 하기엔 왠지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기분이고, 성인군자처럼 '허허'거리기엔 나의 성정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쌓인 화를 풀기 위해 찾아낸 최적의 구술법이 바로 '조카크레파스'인 것이다. 때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때론 사람들과 웃기 위해 나는 '조카크레파스'를 외친다. 사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여러 형태로 응용한 말들이 꽤 있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진짜 걸은 욕을 할 때의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그 나름의 즐거움으로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 툭툭 내뱉다 보면 종국에는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그 웃음은 타인에게로 또 그 옆의 타인에게로 전염돼 한바탕 '개그콘서트'가 벌어지기도 하는 신기한 구술법이다.  


사실 혼자 내뱉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편이 스트레스 해소엔 훨씬 좋다. 확실히 더 많이 웃게 되니까. 한때 유행하던 욕인 듯 욕 아닌 이 '말장난'이 언제부터 나에게 화를 누그러뜨리는 처방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힘듦 속에서도 그저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조카크레파스'를 외치고 나면 이상하게 그 순간만큼은 피식 웃음이 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다음 외쳐볼 말들을 떠올려본다. 좀 더 재미있고 창의적인 말들을 고르고 골라 내뱉고 또 내뱉고. 그렇게 상상에 상상을 더해 말을 만들다 보면 그 시간은 스트레스를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아니라 오로지 웃음을 위한 시간이 된다. '조카크레파스'를 위한 시간 말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이 삶을 견뎌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느라 욕보는 우리에게 이 정도 욕쯤이야 뭐. 


"조카크레파스이십팔색기똥찬색깔로꽉찼네. 짜증나는데비타민씨봉봉주스나마실까요. 우리집십팔평월세사십팔원. 보리차보다못한이쌍화차야. 하루살이전등에붙어있는해바라기씨같은아름다운놈. 레몬보다상큼하고딸기보다달콤한위대한이노무시키."




  p.s: 메인 사진은 진짜 조카의 크레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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