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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 Mar 13. 2016

환풍기

타인이 흐른다

작년 12월, 이사를 했다.

예전에 살던 곳은 꼭대기층이라 층간소음이나 방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니 참 별의별 소리들이 내 공간으로 흘러오더라. 옆집의 드럼세탁기 소리, 까르르 웃고 떠드는 소리, 창문 블라인드 내리는 소리.

물론 내가 세탁기를 돌리고 친구들을 데려와 깔깔깔 웃고 창문 블라인드를 올렸다 내리면, 이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는 명백한 소음이 돼버릴 테지.


독립된 공간에서 얼굴도 성격도 모르는 타인의 소리와 섞이며 산다는 것. 참 짜증 나게 신기한 일이다. 방음의 허술함을 피할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의 그 삶을, 생활을 공유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감수성을 타고난 인간에게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환풍기. 특히 환풍기를 타고 새어나오는 '사람 소리'는 가끔 내가 혼자 사는 것인지, 아니면 실체를 모르는 누군가와 동거를 하며 사는 것인지 종종 헷갈리게 만들 때가 있다. 욕실에 달린 환풍기야 그렇다 치자.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면 당연히 층층이 달린 배수관을 따라 그 물이 흐르고 흘러 내 집의 환풍기도 지나가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 맞는 원리인가 아닌가를 따지기 전에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문제는 2층의 환풍기다. 물이 졸졸졸 내려가는 소리도 간간이 들리거니와 한밤중에 느닷없는 한 사내의 가래 뱉는 소리까지 환풍기를 타고 내 침실에 닿는다. 나의 안락한 잠자리에. TV도 라디오도 아무것도 켜지지 않은 적막한 밤중에 들리는 낯선 소리들. 타인의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억지로 잠을 청해야 하는 시간.


가래를 뱉고, 기합소리를 내고, 우당탕탕 테이블에 의자까지 옮기는 소리를 다 듣고 나면, 마치 내가 가래를 뱉고 기합소리를 내고 테이블을 옮긴 것처럼 곧장 지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러다 보니 오늘은 또 무슨 소리를 내려나, 궁금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가래 뱉는 소리는 제외다.)


남의 것을 훔쳐보고, 훔쳐 듣고 싶어 하는 관음증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라지만, 이런 의도치 않은 관음증은 그다지 기쁜 것도 아니오, 선한 성질의 것도 아니다. 궁금해서 궁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집에 오면, 집에 온 것이 아닌 게 된다. 내 소리가 소음이 되어 옆집을 떠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 또 없으니, 스스로 잠금장치를 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내 보금자리에서 편안하게 웃을 수도 노래를 크게 틀어놓을 수도 없다. 어쩌면, 옆집의 소리가 더 잘 들리는 '치명적'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환풍기를 타고 내 공간으로 흘러들어오는 타인의 소리. 거기에는 타인의 습관이 있고 타인의 생활이 있고 타인의 하루가 있다. 알고 싶지 않지만 알게 되는 타인의 일과. 그 속에서 나는, 모르기 때문에 모르고 싶은 비밀과 간혹 마주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 그 사내는 여자친구와 싸우는 듯했다. 여자의 앙칼진 말투와 사내의 깊은 푸념. 끊임없이 주고받는 섭섭하다는 투의 대화들.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환풍기의 빈틈을 비집고 나와 내 베개까지 적시고야 말았다. 이 아름다운 일요일 아침에.


결국, 나는 이어폰을 끼었다. 그리고 무한반복 버튼을 눌렀다. 오늘의 선곡은 성시경의 '당신은 참'이다.





환풍기로 타인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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