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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 Mar 10. 2016

서른다섯

뭐 별거라고.

얼마 전, 생일이었다. 명백한 서른다섯. 종이에 쓰기만 해도 눈으로 보기만 해도 그 질량감이 '툭' 와 닿는 나이. 그 무게를, 이제  견뎌야 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공식적'으로 들어선 서른 중반의 문턱.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한 파티도 없었고, 거나한 생일상도 없었다. 몇몇 친구들의 기프티콘과 소소한 축하 문자라도 받은 게 용하다 싶은 서른다섯의 생일이었다.


내 생일을 유난스럽게 챙겨준 것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장식한 고깔모자와 카카오스토리의 카드뿐.

동그라미 안의 프로필 사진 위로 앙증맞게 씌워진 고깔모자와 연신 펄럭이는 폭죽을 보면서 한동안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얘네들은 왜 이렇게 신이 난 거야'.




스무 살 때엔 서른 살이 '완성형 어른'의 종착지라고 생각했다. 직업도 미래도 연애도 불안한 것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 믿음이 깨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물셋의 방황쯤은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얼마든지 용납될 수 있는 것이었다.


취직 대신 기자아카데미를 택했고 졸업하니 스물넷. 1년 반 인터넷신문 기자 노릇을 하다 모은 돈을 가지고 일본으로 간 것이 스물여섯 때의 일이다. 백엔스시, 와규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닌 대학원에서는 고등학교 때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짝사랑하던 오빠도 있었고 가고 싶은 술자리도 많았지만, 안 다니던 교회까지 다니며 마음을 다잡았다. 낯선 외국어로도 이렇게 공부하는데 진작 했으면 서울대도 갔겠지, 우스운 자만에 빠져보기도 했다. 그렇게 스물일곱, 여덟이 됐고 예기치 않은 사정으로 중도 휴학 후 한국 땅을 밟았을 땐 벌써 스물아홉이었다.


어라, 눈 깜짝할 새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서른 살 참 별거 아니구나 싶었다. 이렇게 쉽게 나이를 먹고, 여전히 나는 가진 것이 없다니. 완성형 어른? 쳇,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걸 바라고 있었구나.


20대엔 방황했고 분주했고 노력했다. 그래 서른부터 다시 시작하자, 마음먹은 게 5년 전이다. 5년 동안 나는 20대 때나 해볼 법한 무모한 도전도 다시 해보았고 안정적인 생활도 누려보았다. 지금은 안정도 모험도 뭣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지만, 나름의 보람과 기쁨을 조금씩 누리며 언제나처럼 '열심히' 사는 중이다.


서른다섯의 무게에 가끔 함몰될 때를 제외하고는.


이만한 나이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그나마 있던 몇 번의 짝사랑도 모두 벙어리 짝사랑으로 끝. 하던 공부를 계속 이어가고 싶지만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선뜻 시작하지도 못하는. 그저 그런 서른다섯.

금수저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흙수저라 비하하며 살지 않았고 누구와 만나도 늘 당당한 나였는데, 요즘은 가진 것 없이 늘어만 가는 나이의 무게에 절로 허무해질 때가 있다.


서른 다섯 즈음되면 애인이 없는 것도 흠이고, 공부만 한다는 것도 흠이 된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도 궁상, 여행을 가는 것도 외로운 뒷방 노인네 취급받기 일쑤다. 후배에겐 모범을 보여야 하고 실수도 들켜선 안 된다. 정제된 자세와 균형 유지가 관건이다. 에라이, 서른다섯이 뭐 별거라고.


타인의 시선에 갇히는 순간이 올까 늘 두려웠더랬다. 여자에게-최소한 나에게- 서른다섯은, 그런 순간을 극복하느냐 아니면 스스로 갇히느냐를 결정짓는 시기다. 이런저런 경험 덕분에 비교적 덜 길들여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사회의 패러다임은 너무 견고하게 짜여 있고 그걸 돌파하기엔 나의 힘이 부족하다. 나의 세계관마저 아직 여물지를 않았는데.


나이, 너무 쉽게 오고 너무 무겁게 심장을 누른다. 몸속의 모든 기관이 시계의 초침 소리를 따라 쭈뼛쭈뼛 날을 세우고 있는 기분이다.


난 아직 젊은데.

아직 실수할 시간도, 채워갈 시간도 충분히 남은 것 같은데 세상은 나에게 '나이가 너무 많다'고 한다. 진짜 나를 짓누르는 것은 나이라기보다 세상의 눈이다.  


그리고 나의 서른다섯을 무엇보다 허무하게 만드는 것은, 서른다섯에 추억할만한 낭만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교회 따위 가지 말고 짝사랑하는 오빠에게 고백이나 해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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