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본전 생각도 하면서.
요즘 마음이 자꾸만 좀스러워져 나도 모르게 멋쩍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마음의 근원이 어디일까 따져보고도 싶지만, 설사 원인을 알게 됐다 해도 쉽사리 고쳐질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에는 나를 잘 따르는-따른다고 생각하는- 후배가 평소 언행이 가벼워 말썽인 업계 지인과 웃고 떠들며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에 왠지 모를 짜증이 났고, 엊그제는 밥을 사주겠다며 내가 직접 불러 놓고는, ‘마실 것도 사주시면 안 돼요?’라고 묻는 한 친구에게 알 수 없는 괘씸함이 일었다. 마음속으로 ‘이런 철딱서니 같으니라고’ ‘뻔뻔하네’ ‘이제 얻어먹는 게 너무 당연한 거냐’ 같은 말들을 몇 백 번씩 되뇌었는지 모른다.
“응~ 그래. 뭐 마실래?”라는 쿨한 대답 뒤엔 밑도 끝도 없이 언짢고 불편한 마음들이 가득히 들어섰다.
왜 이런 좁은 마음들이 자꾸만 튀어나와서 쓸데없이 머리를 아프게 하는지...
어쩌면 나는 이제, 이런 무의미한 관계에 지쳐버린 건지도 모른다. 메아리는 없는 관계들에 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면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신뢰를 얻을 거라 믿었지만, 가만히 보니 가볍게 말하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눈앞에 보이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좀 더 베풀고 배려하면, 그래도 체면이 있고 인지상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그런 나에게 작은 고마움이나 미안함 정도는 가질 줄 알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더 뻔뻔해지거나 모든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하찮은 마음뿐이었다.
만약 김생민이 영수증을 봤다면 ‘스튜핏’을 백만 번 외쳐도 모자랄 만큼 소비지향적인 사람인 데다 기분파인 나지만, 늘 베푸는 것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허무해질 때가 많다. -그러니 더더 스스로를 스튜핏하다 여길 수밖에-
참, 이상하지...
관계에 지칠수록, 본전 생각이 난다. 결국 그렇게 된다. 체면이 있고 인지상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그렇다.
그동안 길바닥에 수없이 뿌린 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배려하며 살아왔다 생각해 온 모든 순간들이 참말 아깝다. 누가 그러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니니, 딱히 누굴 콕 집어 비난할 수도 없다. 그저 내 업보, 내 과업이다.
이제, 주기만 하는 건 너무 지친단 말이지. 응, 정말 지친다고...
남 생각만 하고 퍼주기만 한다고 ‘똥기만’이라 놀리며 잔소리를 퍼붓던 엄마와 언니를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받기를 바라면서 준 적도 없건만, 이렇게 늘 혼자 퍼주다 혼자 짜증에 받쳐 괴로워하는 꼴이라니.
이런다고 누가 날 더 소중히 생각해줄까. 그저 잠시 지나가는 바람 같은 관계들 속에서. 이건 정말이지 ‘나는 나 너는 너’ 개인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지향하며 살아온 내 인생에 완전히 모순된 오점 같은 거다.
그러니 나도 조금씩 ‘똥기만’을 자제하고 선을 긋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적당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본전 생각도 하면서. 좁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더 이상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