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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매개체

회고

by Han

고등학생 시절 플로리다에서 지냈을 때, 매 주 FYE라는 음반가게에서 앨범을 두어개 씩 사서 듣곤했다. 음반 가게 직원의 추천을 받은 이후로 쭉 소울 뮤직에 빠지게 된 것 같다.

미국에서 지내며 생겨버린 이상야릇한 사대주의(?) 탓인지 한국 음악은 잘 안 듣는것 같다. 가끔은 꼰대가 된 것 같다.

요즘엔 우연히 By all means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됐다. 92년대에 발매된 It's Real이라는 앨범의 Love lies를 처음 듣는 순간 말 그대로 전율이 일었다.

드럼 스네어의 쫀쫀한 타격감과 묵직하게 박히는 킥, 그리고 중간 중간 베이스 슬랩이 그루비 함을 더한다. 뉴잭스윙 특유의 리듬감을 머금은 피아노가 절정으로 향할 때 색소폰과 감정을 쌓아가는 서사 또한 흠잡을 데가 없는 곡이다.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게 되는 그루브와 까딱거리게 되는 머리는 멈출 새가 없다. 이 앨범은 Love Lies 외에도 모든 곡이 명곡이라 불릴 수 있는 명반이다.

음반을 디깅하다보면 최신곡에 관심을 둘 겨를이 없다. 음악의 존재를 인지하기 전부터도 이미 엄청난 곡들이 이렇게 많이 숨어 있는데 과연 평생을 잊혀져가는 음악을 찾고 들어도 전부 들어볼 수 있을까 싶다.

괜히 사대주의 핑계를 대며 한국 음악을 듣지 않는다곤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시절이 그리워서 그런것 같다.

되돌릴 수 없는 그 시절, 미국에서 보냈던 소중한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 줄곧 들어왔던 장르의 음악을 들으면 가끔은 그 시절 속의 나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계속 착각하고 싶을 만큼 그 시절이 그립고 좋았나보다.

사람은 냄새를 기억할 수 없다고 한다.
냄새는 흐려져도 음악은 그 때의 공기와 감정을 다시 꺼내올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 같다. 그 좋았던 때의 비슷한 분위기를 떠올리면 뭔가 그 때를 생경하게 기억해 낼 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더욱 더 집착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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