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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Sep 01. 2024

교토에서 만난 닮고 싶은 어른 | 일본 교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여행을 가는 사람, 혹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여행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경우가 많지요.


이번 여행지는 교토였는데요, 태풍이 다가오는 비 오는 교토를 60대 남매 두 분과 함께 걷게 되었습니다. 남매 중 누나는 일본에 유학을 오셨다가 정착한 지 40년이 되어가고, 남동생은 한국에서 누나를 만나러 일본에 와서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저의 미래 목표 중 하나는 귀엽고 당찬 할머니이자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인데요. 두 분과 여행하다 보니 닮고 싶은 모습이 아주 많았습니다.



1. 누나가 자주 쓰는 표현이 있었는데요. “재밌는 거”였어요. 일본에 오래 사셨다 보니, 현지인들만 알고 있는 디테일을 잘 알고 계셨는데요. 걷다가 그런 디테일들이 나오면 “재밌는 거 보여드릴게요.”라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는 그 표현이 참 좋았어요. 흥미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일상에서 재미를 찾는 모습, 그리고 "재밌는 거"를 소개해주실 때 눈에 가득 찬 장난기에 저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2. 이 날은 태풍 산산이 일본 열도에 상륙한 날이었어요. 태풍이 오사카와 교토 쪽으로 접근하면서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많은 관광지와 가게들은 태풍에 대비하며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비가 심하게 퍼붓지는 않아서,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 습하고 축축한 날씨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동생은 비 오는 날씨에서 좋은 점에 집중하셨습니다. “비가 퍼붓지 않고 보슬보슬 내려서 좋다.” “땡볕 때문에 덥지 않아서 좋다." "관광객이 너무 많지 않아서 좋다."


최근 가족여행 십계명이 화제였죠.


1) 아직 멀었냐 금지.
2) 음식이 달다 금지.
3) 음식이 짜다 금지.
4) 겨우 이거 보러 왔냐 금지.
5) 조식 이게 다냐 금지.
6) 돈 아깝다 금지.
7) 이 돈이면 집에서 해 먹는 게 다냐 금지.
8) 이거 무슨 맛으로 먹냐 금지.
9) 이거 한국 돈으로 얼마냐 금지.
10) 물이 제일 맛있다 금지.


불평과 부정적인 언어는 전염이 잘되기 때문에 이 말들이 금지어로 화제에 오른 것 같아요. 하지만 동생은 상황의 좋은 측면에 집중하셨고, 늘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셨어요. 덕분에 적당한 비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3. 누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는데, 호텔 매니지먼트도 그중에 하나라고 해요. 로컬 아티스트와 예술대학 학생들과 협업해서 호텔을 꾸미고, 키워나가고 계시다고 하셨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에 묵고 있는 안테룸 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안테룸은 교토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해석한 교토와 일본 예술에 대해 경험해 볼 수 있는 부티크 호텔이에요. 학생 기숙사를 개조해서 만들었고, ‘안테룸’ 즉 ’대기실‘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대기실은 어떠한 일에 앞서 기다리며 준비하는 방이죠. 교토를 여행하기에 앞서 잠시 머무르며 다음 여행 장소로 연결해 주는 호텔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호텔에는 로비에서부터 방 안까지 로컬 예술 작품들이 펼쳐져 있어요. 테마가 계속 바뀌는데 이번에는 일본 최대 규모의 인디 게임 축제 BitSummit과의 콜라보를 통해 현대 미술의 게임성과 인디 게임의 예술성에 주목한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디테일과 기억에 남는 스토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누나분이 저를 정말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경청을 하셨어요. 그리고 조만간 견학을 가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경청과 열린 마음이야 말로 경험이 쌓일수록 지켜야 할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끝없는 성장과 발전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요. 다음에 교토에 온다면 누나의 호텔에 꼭 묵어야겠어요.


4. 동생은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8년 전에 은퇴를 하셨대요. 그리고 지금은 목조로 된 집과 사우나를 짓고 계세요. 그냥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지은 집을 팔고 계세요. 60대에 완전히 다른 분야에 뛰어들어, 세일즈가 가능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상상, 해보셨나요? 30대만 되어도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저는 이 분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요.


5. 여우신사로도 불리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에요. 누나가 신사를 관리하는 신쇼쿠와 대화를 나누셨는데, 전말은 이랬습니다. 일본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많은 만큼, 표지판에 한국어를 자주 볼 수 있아요. 그런데 표지판에 오타가 있었던 거예요.



‘허가가 없는 분 입장 금지’여야 하는데, ‘하가’라고 적혀있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타가 있네.”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 분은 생각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행동을 하셨어요. ‘하’와 ‘허’를 직접 종이에 적어서 신쇼쿠에게 보여주시며 그 차이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습니다.


틀린 것을 보았을 때 행동하는 것, 틀렸다고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6. 두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에게 존댓말을 하셨어요. 함께 교토를 걷는 내내 따뜻하게 대해 주셨지만, 절대로 불편한 질문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존중해 주시는 것이 깊이 느껴졌어요.


7. 반나절 동안 저희는 계속 걸었는데요. 두 분은 저보다도 빨리 걸으시고 에너지가 넘치셨어요. 나이가 들어도 걸어서 세계를 여행하고, 영감을 얻으려면 체력 관리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인연은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좋은 어른을 만나 함께 걸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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