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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Sep 01. 2024

300년 넘은 브랜드가 향기를 파는 방법 | 일본 교토

1,400년 전, 큰 향나무 조각이 일본 아와지 섬 해안에 떠내려왔습니다. 그 나무에서 나오는 놀라운 향기를 알아차린 섬 주민들은 나무를 황실에 선물로 바쳤어요. 이때부터, 일본의 향 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에는 향을 감상하는 독특한 방식이 있습니다. 몬코라고 부르는데요. 향을 듣는다는 뜻입니다. 향도에서는 향이 내게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호흡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향기가 나에게 다가와요. 이때 향이 전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천천히 듣고 충분히 음미하는 것을 몬코라고 표현합니다. 단순히 향을 맡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동원해 향을 완전히 감상하고 이해하는 거예요. 좋은 냄새를 가진 기운을 받아 마음을 닦고, 코를 통해 육체와 정신을 관찰하는 수련법이죠.




일본의 향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1705년 교토에서 시작한 쇼에이도입니다. 창업자 하타는 교토의 황궁에서 일하면서 배운 향 제조법을 기반으로 최고급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정교한 향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궁중의 비밀스러운 향을 민간에 전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후 12대에 걸쳐 약 320년간 자연의 축복을 받은 향을 통해 고객들에게 향기로운 삶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쇼에이도의 향 혼합 과정은 하나의 예술과도 같아요. 고도로 훈련된 마스터들은 수세기 동안 전해 내려 온 비법을 바탕으로 천연 재료의 품질, 균형, 비율을 세심하게 조절합니다. 양이나 품질에 아주 조그만 변화만 있어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 결과로 감각을 깨우는 미묘한 향기가 탄생합니다.


쇼에이도가 대단한 것은 장인의 마음과 헤리티지를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춰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데요. 쇼에이도의 향기 박물관, 쿤주칸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쿤주칸에 들어가면 천장에 매달린 박스가 먼저 눈에 띄는데요. 카오리 박스예요. 카오리는 일본어로 좋은 향기를 뜻해요. 카오리 박스에 들어가면 나만의 공간에서 쇼에이도 인센스의 향을 '들어볼' 수 있어요.



카오리 박스에서 나오면 원료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향의 역사와 종류, 원료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요.



그 이후에는 각 원료가 담긴 향기 기둥에 가서 시향을 할 수 있어요. 펌프 눌러줄 때마다 향기가 나에게 다가옵니다.



반대쪽으로 걸어가면, 어둡고 차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요. 의자에 앉거나, 인센스 근처에 다가가서 향기를 조용히 음미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300년이 넘은 브랜드도 이렇게 트렌디하게 매장을 꾸밀 수 있어요.



다음 공간은 수백 가지 제품을 확인할 수 있는 매장 공간인데요. 다양한 향과 함께 다채로운 테마의 인센스 홀더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일본 전통 문양부터 디즈니 캐릭터까지 아주 다양하답니다.





더 모던한 변주를 위해 1989년에는 Lisn (리슨)이라는 서브 브랜드를 론칭했는데요. 향을 듣는 몬코를 상징하기 위해 "Listen"이라는 발음을 따서 브랜드 이름을 만들었다고 해요. 리슨은 현대적인 디자인과 더욱 캐주얼한 향을 선보이고 있어요.


리슨의 디자인 컨셉은 "Resonate"로, "울리다, 공명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리슨의 컨셉은 일상생활에서 리드미컬하게 녹아드는 향과 제품 디자인에 반영되고 있어요.



향수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노트'라는 표현이 익숙하실 거예요. 19세기에 영국의 화학자이자 조향사였던 George William Septimus Piesse가 만든 개념인데요. 그는 저서 <The Art of Perfumery>에서 후각을 음계의 음표와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다는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Piesse는 향기는 음표와 같아서, 서로 다른 '노트'들이 조화를 이루며 향을 깊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트는 크게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로 나뉩니다. 탑 노트는 마치 높은음과 같습니다. 음악에서 높은음이 곡이 시작에서 청중의 주의를 끌듯이 탑 노트도 향수를 처음 뿌렸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향입니다. 이 향은 빠르게 퍼지며 보통 15분 이내의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집니다. 음악에서 높은음이 선명하게 들리지만 곧 사라지는 것처럼요. 미들 노트는 곡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중간 음과 같습니다. 중간 음이 곡의 주제를 강화하고 전반적인 조화를 이루는 역할을 하듯, 미들 노트도 향수의 핵심적인 향을 형성합니다. 탑 노트가 사라지고 나타나는 이 향기는 2-3시간 정도 지속되며, 향수의 성격을 결정짓습니다. 음악에서 중간음이 곡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처럼, 미들 노트는 향수의 복잡성을 더해줍니다. 베이스 노트는 곡의 기초를 다지는 낮은음과 같습니다. 낮은음이 곡의 안정감을 주고 깊이를 더하는 것처럼, 베이스 노트도 향수의 깊고 지속적인 향기를 형성합니다. 이 향은 오랫동안 지속되며, 향기의 여운을 느끼는 역할을 합니다.


음악에서 여러 음이 함께 어우러져 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향수에서도 여러 노트가 결합되어 완성된 하나의 향을 형성합니다. 이를 어코드라고 불러요. 음악의 코드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다양한 꽃 향이 조화를 이루는 플로럴 어코드, 나무 향이 결합된 우디 어코드 등이 그 예입니다.


리슨은 이 개념에 착안해 도레미파솔라시도 8가지 음계에 맞는 8개의 인센스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소비자들이 향의 화음을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소비자들은 각 음계의 인센스를 개별적으로 즐길 수도 있고, C메이저 (도미솔), F메이저 (파라도)처럼 코드를 만들어 즐길 수도 있어요.


이 외에도, 나무가 숨을 쉬듯이 공기를 정화하는 것을 향으로 만든 제품, 가을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제품 등 인상적인 제품들이 많습니다.



향을 피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쉐 제품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향과 다양한 포장지를 선택할 수 있어요.



저도 두 가지 향을 구매해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있어요.



일본의 몬코 문화에 대해 알게 되고, 쇼에이도와 리슨 매장을 둘러보며 향이 일상에 주는 리듬과 에너지에 대해 느끼게 되었어요. 저도 앞으로 모든 감각을 동원해 향을 듣고, 좋은 향이 주는 기운으로 마음을 닦는 몬코를 일상에 녹여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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