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 없는 매장, 질문하는 리테일 '하메이'
2008년 타오바오 스토어로 시작한 하메이는 중국에서 정식 유통되지 않았거나, 현지에서 지나치게 고가로 판매되는 해외 브랜드를 중심으로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10여 년간 쌓인 것은 단순한 매출이 아니라, 선별 안목과 신뢰 자산이었습니다. 특히 위조와 밀수가 만연한 화장품 시장에서 해외 브랜드를 직접 수입하며, 소비자에게 “여기서 사면 진짜다”라는 신뢰를 심어주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의 시작은 전략 보고서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 우연한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 단골 고객이 급히 립스틱을 사러 왔다가 창고에 쌓인 제품을 둘러보고 대량 구매를 한 사건이 계기였습니다. 이 경험은 하메이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공간 자체를 경험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리하여 하메이의 매장은 전통적인 ‘예쁜 매장’이 아니라, 창고를 연상시키는 밀도 높은 진열 속에서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탐색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메이는 기획 단계에서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온라인 주문이 처리되는 물류 과정을, 오프라인에서 그대로 보여주자.”
세련된 화장품 카운터 대신 산업용 철제 선반을 배치하고, 온라인 주문이 포장되고 배송되기 직전의 풍경을 매장 안으로 옮겼습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브랜드의 백스테이지이자 물류 현장입니다.
이 구조는 고객을 ‘대접받는 손님’이 아닌, 내부를 들여다보는 내부자로 만듭니다. 신뢰는 장황한 설명이 아니라, 노출된 구조에서 만들어진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하메이는 진열 방식을 통해 소비자 경험을 재정의했습니다.
• 브랜드의 해체: 럭셔리 명품과 대중 브랜드, 니치 브랜드를 카테고리별로 혼합 배치했습니다. 화장품을 ‘브랜드’라는 계급이 아닌, 슈퍼마켓 식재료처럼 취향대로 고르는 ‘소비재’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 정보의 절제: 가격표와 장황한 설명, 랭킹을 과감히 제거했습니다. 숫자가 판단을 지배하지 않게 함으로써, 제품은 비교의 대상이 아닌 발견과 경험의 대상이 됩니다. 모든 제품의 접근성을 평준화하여 고객이 “얼마인가”보다 “나에게 맞는가”를 먼저 묻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파격적인 수는 샘플 판매였습니다. 본래 마케팅용 증정품이었던 샘플을 하메이는 ‘미니 사이즈 상품’으로 재정의했습니다. 고관여 상품인 화장품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무료 테스터 대신 소용량 제품을 유료로 구매하게 하여 ‘가벼운 첫 시도’를 유도한 것입니다. 이는 발견을 즉각적인 매출로 전환하는 영리한 장치가 되었습니다.
Z세대가 하메이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공간 자체의 매력입니다. 창업자 Damien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메이는 물건을 사지 않아도, 그냥 돌아다니고 싶은 공간이어야 한다.”
하메이는 ‘창고형 매장’이라는 큰 틀만 유지하며, 각 매장마다 완전히 다른 테마를 부여합니다.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해 공간을 설계하고, 화장품을 전시물이자 오브제로 배치합니다.
• 상하이 신톈디점: ‘슈퍼마켓’ 컨셉. 카트와 진열대 사이에 색조 화장품과 과일이 섞여 있고, 냉장 진열대에는 마스크팩과 음료가 함께 배치. 화장품을 장 보는 경험으로 재해석.
• 항저우 지점: ‘70~80년대 사무실’ 컨셉. 책상과 책장이 화장품 진열대가 되고, 회의실에서 헤어 기기와 뷰티 가전을 체험 가능.
• 우한 지점: ‘은행’ 컨셉. 근현대 은행 건물을 활용한 공간에서 로봇팔이 화장품을 랜덤 박스에 담아 포장. 우한점 한정 상품 제공.
지역 예술가와 협업한 이 이질적인 공간들은 일상을 갤러리로 만들며, Z세대가 스스로 사진을 찍고 공유하게 만드는 강력한 미디어가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 뷰티 시장의 강자는 단연 올리브영입니다. 올리브영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성공 가도를 달려왔습니다. ‘올영픽’으로 대표되는 MD 추천과 ‘올리브영 어워즈’로 대표되는 랭킹 중심의 운영은, 소비자에게 묻기보다 답을 제시하는 플랫폼이라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덕분에 올리브영에서의 쇼핑은 빠르고 안전하며, 소비자는 ‘합리적인 선택을 완수하는 사람’이 됩니다.
브랜드 메시지 소비자 구조에 익숙했던 저에게, 하메이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신선한 자극이었습니다.
• 제품 중심의 리테일: 가격이 판단을 지배하지 않도록 한다.
• 스토어 체류 시간 늘리기: 다양한 구색의 제품을 제한된 정보와 함께 배치하고, 테마와 공간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흥미를 유도한다.
• 구매 결정을 빠르게: 경험의 경계를 제품 구색에 두고, 고민을 유발하는 테스터는 없애되, 작은 사이즈로 가격 장벽을 낮춰 즉시 구매 가능하게 한다.
하메이는 리테일이 단순히 물건을 건네는 채널을 넘어, 소비자의 선택 방식과 구매 행동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브랜드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받던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스스로 발견하고 정의하는 리테일 혁신의 정수를 하메이에서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