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년 전통의 일본 센비키야 과일가게 이야기
한 통에 30만 원짜리 멜론, 한 개에 4만 원이 넘는 오렌지를 파는 과일가게가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가게가 191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 최고급 과일 전문점, 센비키야 이야기입니다
1834년, 도쿄 니혼바시에서 사무라이 출신 오오시마 벤조가 작은 과일 노점상을 열며 센비키야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창술 도장을 운영하던 그는 대기근으로 생계가 어려워지자, 주변에서 나는 감, 포도, 귤 등을 도쿄로 가져와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2대째에 이르러 큰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창업자의 며느리는 대형 가쓰오부시 도매상의 딸이었고, 이를 통해 센비키야는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등 정계와 사회 고위층을 단골로 확보합니다. 아사쿠사와 니혼바시의 고급 요정에도 과일을 납품하며 입소문으로 명성을 쌓았고, 작은 과일 가게는 일본 최고급 과일 전문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대째에는 서양 과일 수입과 과일 식당 운영을 통해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1868년 서양풍 3층 건물을 세우고, 딸기 우유, 과일 펀치, 아이스크림 소다, 케이크, 과일 샌드위치 등 오늘날 인기 있는 디저트 메뉴의 원형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부담 없이 양식과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4대에 이르러 센비키야는 유통을 넘어 직접 과일 생산에 나섰습니다. 1914년, 도쿄 인근에 약 3,000평 규모의 농장을 조성하고 온실 다섯 동을 세워 멜론 재배에 집중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온실 머스크멜론은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진 모든 영양분을 단 하나의 멜론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길러졌고, 곧 ‘과일의 왕’이라 불리며 센비키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상품이 되었습니다. 특히 높은 채광성을 갖춘 유리 온실에서 길러진 시즈오카 머스크멜론은 뛰어난 완성도로 유명합니다.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우아하고 깊은 향이 퍼지며, 풍부한 과즙과 농밀한 단맛이 입안 가득 여운을 남깁니다.
5대째 거품경제 시기에는 일본 전역에서 과일 선물세트가 불티나게 팔리며 큰 호황을 누렸지만, 거품경제 붕괴와 함께 위기를 맞습니다. 무리하게 확장한 지점을 정리하고 구조 조정을 단행하며 암흑기를 맞았습니다.
1995년, 센비키야는 6대 경영자인 오시마 히로시가 대표로 취임하며 중요한 전환점을 맞습니다. 그는 단순히 회사를 이어받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던졌습니다. 그리고 업을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나누어 새롭게 정리합니다. 그가 말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센비키야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였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시대와 고객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즉, 본질은 유지하되 방법은 유연하게 가져가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오시마 사장은 먼저 소비자가 센비키야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부터 들여다봤습니다. ‘비싸다’, ‘쉽게 들어가기 어렵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쉬운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가격을 낮추거나, 상품 구성을 대중적으로 바꾸는 것.
하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고급 과일 전문점이라는 정체성을 훼손하는 순간, 센비키야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다른 해법을 선택합니다. 과일을 그대로 파는 방식에서 벗어나, 과일을 활용한 가공 상품으로 영역을 확장한 것입니다. 케이크, 젤리, 잼, 주스, 샌드위치 등이 그 결과였습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자원의 재해석’이었습니다. 외형이 조금 상한 과일은 제값을 받기 어렵지만, 가공의 재료로 쓰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원가 구조는 효율적으로 바뀌었고, 소비자는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센비키야의 품질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매장을 찾지 않던 젊은 층과 중산층이 새로운 고객으로 유입되었습니다. 동시에 최고 등급의 과일은 기존과 같은 가격과 방식으로 유지되었기에,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는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본질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사업의 외연을 확장한 셈입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2018년 기준 매출 92억 엔, 취임 당시 대비 약 다섯 배 성장. 현재 매출의 약 80%는 과일 가공품에서 발생하며, 신선 과일 매출은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기존 사업을 지키면서 새로운 사업이 네 배 규모로 성장한 구조입니다.
센비키야가 오랜 시간 프리미엄 과일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 전략적 통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카테고리를 재정의한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과일은 ‘먹는 것’이라는 단순한 기능으로 소비됩니다. 그러나 센비키야는 소비자가 과일을 선택하는 결정적 순간에 주목했습니다. 병문안, 경조사, 첫 방문, 기업 간 선물처럼, 한 번의 선택이 관계와 인상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과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회적 판단의 결과물이 됩니다. 센비키야는 이 순간에 소비자가 느끼는 불안과 긴장을 브랜드 전략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맛이나 가격을 넘어, 선택이 주는 심리적 부담까지 고려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센비키야는 과일을 단순히 먹는 대상이 아니라 마음과 관계를 안전하게 전달하는 프리미엄 선택지로 재정의했습니다.
둘째, 가치를 시각적으로 입증한 점입니다. 프리미엄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좋다’는 말을 넘어서 고객이 직접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머스크멜론의 T자형 줄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최고의 품질을 보증하는 ‘일지일과(一枝一果)’ 재배 방식의 상징입니다. 일반적인 멜론은 한 줄기에서 여러 개의 열매를 맺지만, 센비키야의 최고급 멜론은 한 줄기에 단 하나의 열매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솎아냅니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모든 영양분과 수분이 오직 한 통의 멜론에 집중되도록 하여, 압도적인 당도와 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입니다.
수확할 때 멜론의 메인 줄기를 좌우로 길게 남겨 자르기 때문에 T자 모양이 형성됩니다. 이는 ‘선택받은 단 하나의 열매’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훈장과 같습니다. 동시에 T자형 줄기는 소비자가 멜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줄기가 빳빳하고 녹색이면 갓 수확된 신선한 상태를 의미하며, 줄기가 조금 시들기 시작할 때가 멜론이 가장 달콤하고 부드러운 ‘먹기 좋은 시기’임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소비자는 단순한 가격이 아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품질 증거를 통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고, 브랜드의 권위와 신뢰는 자연스럽게 강화됩니다.
셋째, 경험의 계층화를 통해 브랜드를 확장한 점입니다. 센비키야는 희소성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넓은 고객층과 접점을 확보하기 위해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최상급 멜론과 경매급 과일은 브랜드의 위신과 정체성을 강화하는 ‘Flagship’ 역할을 맡고, 과일 파르페, 젤리, 샌드위치 같은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디저트는 젊은 층과 관광객이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Diffusion’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렇게 경험을 계층화함으로써 접점은 늘리되,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는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센비키야는 단순히 고급 과일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심리적 가치를 설계하고 시각적으로 증명하며 경험을 전략적으로 계층화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전략적 접근이 바로 191년간 지속된 프리미엄 성공의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