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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Feb 14. 2024

브랜드 구조조정의 3가지 단계

코스타리카 여행을 할 때, 아주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1901년에 오픈한 가게였는데, 진짜 신기했던 것은 맛이 단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 맛에 사이즈만 다르게 판매하고 있었어요. 그때가 한창 브랜드 포트폴리오 구조조정을 논의하던 시기라 더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저희 브랜드도 딱 한 가지 제품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70여 년 후 제가 이 브랜드를 처음 맡을 때에는 300여 개의 제품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품, 패키지, 가격 모두가 중구난방이었어요.


수십 년 전 출시된 제품, 한 때 잘 나갔는데 이제는 다른 제품들보다 경쟁력이 없는 제품, 새로 출시되어 광고하고 있는 제품.  올드한 패키지, 귀여운 캐릭터가 있는 패키지, 요즘 감성에 맞추어 리뉴얼한 패키지. 5만 원 대부터 1천 원 대를 모두 포괄하는 가격대까지!


중구난방인 브랜드 구조는 크게 3가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1. 브랜드 인지도와 고려도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보니, 누구에게도 관련 없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2. 마케팅 투자 효율이 떨어졌습니다. 투자해야 할 제품이 많아지다 보니, 브랜드의 코어에 대한 포커스가 떨어졌어요.

3. 매대가 복잡해지고 소비자들이 혼란을 느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해 갔던 과정을 공유해보려고 해요.



1. 브랜드 선택을 돕기 위한 구조조정


사람은 하루에 최대 1만 번의 결정을 한다고 해요. 큰 비즈니스 결정부터, 오늘은 운동을 갈지 말지, 어떤 메뉴를 고를지, 신발을 어느 쪽부터 신을지까지. 기억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합니다. 이렇게나 결정할 것들이 많은데, 모든 순간에 깊게 고민을 하면 너무 피곤해지겠죠? 그래서 우리는 옳다고 느끼는 대로 최대한 빠르게, 최소한의 노력으로 결정을 하려고 해요. 뇌가 프로세스를 단순화하는 것이죠. 현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무의식이 우리가 내린 결정 중 최대 95%를 주도한다고 해요. 오토파일럿 (Autopilot) 모드를 발동시켜 원래 하던 일을 특별한 생각 없이 계속하게 하거나, 비선택 (Deselection)을 빠르게 도와 선택지를 확 줄여주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이 과정을 흔드는 것이 브랜드 마케터가 해야 할 일입니다. 원래 계속 사던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를 고려할 수 있도록 만들고, 비선택 군에 들어가던 브랜드를 선택지 안으로 들여놓는 역할을 해야 해요.


당시에 저희 브랜드는 너무 다양한 제품을 포괄하다 보니,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하는 브랜드가 되어있었어요. 소비자들이 스킨케어 제품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우리 브랜드를 바로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떠올린다 하더라도 나한테 맞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생각 해 바로 비선택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300개 제품을 쭉 세워놓고 판매량과 성장률, 소비자 관련도와 미래 수익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상위 제품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시작했습니다. 전체 매출의 20%도 차지하지 못하는 80% 제품들에 대한 절판 타임라인을 그리고, 매 분기 마켓별로 해당 매출이 얼마나 줄어들지 계산했습니다. 이 부분을 상쇄하고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상위 제품들이 더 열심히 일을 해줘야 했어요. 상위 20% 제품 중 히어로 제품들을 추려서 제품별 성장 타깃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플랜들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2. 브랜드 구조 재설계


20% 제품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했지만, 여전히 포트폴리오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습니다. 긴 세월을 거치며 론칭된 제품들이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제품은 제품 효과를 강조하고 있었고 (Spotless, Age Repair), 어떤 제품은 사용감을 강조하고 있었고 (Creamy moisturizer), 아예 이해 못 할 이름을 가진 제품도 있었어요. 우리 브랜드 매대에 찾아오거나, 브랜드 검색을 한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떠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보통 소비자들이 매대에 찾아오면 선택을 할 때까지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습니다. 관여도가 낮은 생활소비재의 경우에는 10초 미만을 쓴다고 하고, 관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스킨케어 제품들도 몇 분 이상을 할애하는 소비자분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따라서 소비자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구조를 선택할 때는 구매 결정 트리 (Purchase Decision Tree)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매 결정 트리는 구매결정을 위해 고려하는 요소와 순서를 의미합니다.  제가 맡은 마켓의 스킨케어 소비자들의 경우, 브랜드 > 성분/효과 > Form (크림, 세럼, 토너 등) > 가격 순으로 구매 의사결정을 하고 있었어요. 성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성분 자체가 제품의 효과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요 성분을 중심으로 구조를 재설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레티놀, 비타민 C, 콜라겐 등으로 구조를 재편했고, 그 이후 form과 가격 기준으로 매대 진열을 하였습니다.



3. 브랜드 패키지 리스테이지 (Restage) 



마지막 단계는 새로운 구조에 맞추어 패키지를 리뉴얼하는 것이었어요. 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할 때는 see, select, buy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합니다.


1) SEE:

제품 패키지가 브랜드를 잘 나타내는가에 관한 항목입니다. 제품의 로고, 색상, 아이코닉한 자산 등을 잘 활용해서 한눈에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러 가지 브랜드가 있는 매장이나 플랫폼에서 우리 브랜드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제품 패키지에서 공통된 디자인 요소 (unifier)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품 로고의 크기와 위치, 패키지의 독특한 모양이 잘 드러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2) SELECT:

브랜드의 여러 제품 중 소비자에게 맞는 한 가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을 도와주는 항목입니다. 1번과는 달리 제품별로 달라지는 디자인 요소 (differentiator)를 선정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요. Differentiator가 너무 강해지면 디자인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그러면 소비자가 본인에게 맞는 제품을 찾기가 어려워지므로 Unifer와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 브랜드는 성분을 중심으로 효능을 표현하기로 했으니, 이를 강조하기로 했고 다른 색상으로 차별화를 주었습니다.


3) BUY:

제품의 효과나 특성에 대해 소구해서 구매를 일으키는 것을 도와주는 항목입니다. 보통 패키지에 정리된 문구나 사진 등을 포괄합니다. 온라인 쇼핑의 경우 패키지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상세페이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저희 브랜드는 온라인, 오프라인이 모두 중요했기 때문에 문구도 수정하고 제품 효과와 사용감을 알 수 있는 사진들도 넣어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했습니다.



브랜드 포트폴리오 구조 조정, 제품 구조 재설계, 패키지 리스테이지를 통해 브랜드 인지, 고려, 구매 모든 퍼널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히어로 제품을 확실하게 강조하고 충분히 투자해서 우리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였고, 고려 단계에 있는 소비자들에게는 심플한 포트폴리오 구조로 선택을 도왔습니다. 리뉴얼된 패키지와 상세페이지는 구매 전환을 효과적으로 높였습니다.


Less is more. 선택과 집중. 어디에나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브랜드 빌딩에도 적용됩니다. 너무 많은 제품과 혼란스러운 포트폴리오로 고민하고 계신다면, 이 세 가지 방법을 고려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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