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은 1438년부터 1532년까지 남아메리카 일대를 다스린 대제국입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전, 남아메리카는 물론 북아메리카까지 포함한 아메리카 전역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안데스 산맥의 고도 3,400m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쿠스코는 잉카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잉카 제국의 시작점이자, 잉카인들의 정치와 문화, 건축의 중심지였습니다.
쿠스코를 중심으로 문명을 꽃피우던 잉카 제국은 스페인의 침략으로 인해 채 100년이 되기도 전에 그 역사를 마감하고 맙니다. 쿠스코의 골목을 걸으며 알게 된 잉카 문명의 탄생과 번영,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설움, 그리고 독립을 향한 열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Plaza Mayor de Cuzco는 쿠스코의 메인 광장입니다. 쿠스코에 흐르는 두 개의 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요. 바로 이곳에서 잉카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잉카 문명의 시조는 망코 카팍입니다. 첫 잉카인이 바로 망코 카팍이에요.
전설에 따르면, 망코 카팍은 태양신 인티와 달의 여신 마마킬라 사이에서 태어났대요. 망코 카팍에게는 3명의 형제와 4명의 자매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인 태양신 인티가 황금으로 된 지팡이를 망코 카팍과 그의 형제들에게 주면서, 황금 지팡이가 저절로 꽂히는 곳에 찾아가 나라를 세우라는 계시를 내립니다. 8명의 형제자매들은 나라를 세울 터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누빕니다. 그 과정에서 3명의 형제들은 돌이 되거나, 동굴에 갇히고, 홀로 떠나버리는 등 모두 사라졌고, 망코 카팍과 4명의 누이들만이 쿠스코에 도착합니다. 그때, 황금 지팡이가 현재 쿠스코 광장이 있는 곳에 꽂혔고, 망코 카팍은 그 자리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합니다. 이것이 13세기에 건국된 쿠스코 왕국의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버전은 이렇습니다. 망코 카팍은 페루의 한 지역에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났고, 성장한 후 한 부족의 족장이 됩니다. 그는 부족을 이끌고 현재 쿠스코 지역으로 이동했고, 그곳에 살던 3개의 부족을 정복한 후 쿠스코 광장이 있는 곳에 정착합니다. 전설과 어느 정도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지만, 이 쪽이 훨씬 현실적이어서 고고학계에서는 이 버전을 정설로 보고 있다고 해요.
쿠스코는 잉카 언어인 케추아어로 배꼽이라는 뜻입니다. 잉카인들은 쿠스코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고, 쿠스코에서부터 세력을 사방으로 넓혀 주변 부족 국가들을 정복합니다. 잉카 제국이 최대로 번성했을 때에는 현재의 페루, 볼리비아 남서부, 칠레, 아르헨티나 북서부, 에콰도르 서부, 콜롬비아 남서부 등 총 6개국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습니다.
수도인 쿠스코에는 잉카 제국의 장군, 성직자, 왕족 등 고위층들이 궁전, 저택, 사원 등을 짓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광장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은 잉카 건물은 아니에요.
1532년에 168명의 스페인 군대가 8만 명의 잉카 군을 제압하고, 쿠스코를 점령했거든요. 스페인은 잉카 건물을 허물고 스페인식 건물들을 새로 올립니다. 그래서 현재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스페인 식민지 때 지어진 건물들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쿠스코 대성당의 자리에는 원래 잉카 제국의 궁전이 있었다고 해요.
쿠스코 대성당 뒤로 숨은 노란 빌딩이 보이시나요? 1600년대에 쿠스코에 세워진 첫 번째 학교래요. 투팍 아마루 2세라는 페루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 공부했던 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투팍 아마루 2세는 1742년에 특권계층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원래 이름이 투팍 아마루는 아니었고,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José Gabriel Condorcanqui)였습니다. 그는 쿠스코에서 공부를 했고, 무역상이 되었다고 해요. 1700년대 말, 페루를 식민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은 새로운 법을 공표합니다. 이로 인해 광산 및 면화 노동자들이 심한 착취를 당하게 돼요.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는 독립운동을 기획합니다.
그는 잉카 제국의 후신국가인 신잉카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스페인에 끝까지 항전했던 투팍 아마루 1세의 이름을 따서 투팍 아마루 2세로 이름을 바꿨어요. 그리고 잉카 제국의 부흥 및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차별 철폐를 외치며 봉기를 합니다. 투팍 아마루 2세는 공식적인 황제는 아니었지만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맞선 독립운동가로서 많은 페루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독립의 선구자이자 민족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국 래퍼인 투팍의 이름은 이 사람에게 유래한 것이라고 해요. 투팍의 어머니는 흑인 민권 운동가였고, 투팍 아마루 2세의 스토리를 듣고 아들의 이름을 투팍 아마루 샤커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로레토 거리는 쿠스코 마요르 광장과 가장 중요한 신전인 코리칸차 (Qorikancha)를 잇는 아주 중요한 골목입니다. 로레토 거리에서 잉카 궁전 벽의 일부를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한 이후에 돌 기초는 그대로 두고 윗부분 건축 양식을 바꾸었대요. 스페인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건축이었다고 합니다.
이 골목에는 여학생들이 공부했던 학교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주로 면화와 수공예를 배웠다고 해요. 이 거리에서 여러 수공예품과 로컬 의상들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라마와 알파카도 만날 수 있습니다.
라마와 알파카는 남미의 안데스 산맥 지역에서 발견되는 낙타과 동물입니다. 라마가 보통 알파카보다 크고, 목과 다리, 귀가 더 깁니다. 귀가 바나나 모양이에요. 알파카는 다리와 귀가 짧고, 동글동글한 얼굴과 귀를 가지고 있어요. 라마의 털은 두껍고 굵어서 겨울옷이나 담요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알파카는 부드럽고 가벼운 털을 가지고 있어서 니트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고 해요. 라마는 하루에 45kg-60kg의 무게를 싣고 30km까지 이동할 수 있어서 짐을 운반하는 수송 동물로 활용했다고 하고, 알파카는 의류 및 직물 산업에 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쿠시칸차는 케추아어로 "행복한 울타리"라는 뜻입니다. 잉카 제국의 궁전, 사원, 주거지, 정부 건물이 포함된 공간이었고, 잉카 문명의 중심지이자 다양한 종교/정치 행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파차쿠티 황제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파차쿠티는 쿠스코 왕국의 아홉 번째 왕이자, 잉카 제국의 첫 번째 황제입니다. 파차쿠티는 '시간과 공간을 흔드는 자'라는 뜻으로, 재위 기간 동안 작은 쿠스코 왕국을 거대한 잉카 제국으로 확장하는 기틀을 닦았습니다.
파차쿠티는 원래 왕이 될 순번은 아니었습니다. 셋째 아들이었거든요. 하지만 인근 부족이 쳐들어왔을 때, 아버지와 형들이 수도를 버리고 피난을 간 와중에 혼자 남아 공격을 막아내면서 정치적 입지를 키우게 됩니다. 결국 그는 형들을 제치고 왕이 됩니다. 그는 훌륭한 정치가이자 뛰어난 군사 지휘관이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파차쿠티는 영토를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쿠스코의 도시 계획과 건축에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대부분의 건물들을 개축하고, 새로운 궁전과 탑을 지어 잉카인의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잉카인들이 그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칭송했고, 현재에도 페루인들 사이에서 명군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잉카 제국은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번성하여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변 중요한 문명들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이를 잉카 문명에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래요. 잉카인들은 카랄 문명의 건축 기술과 농업 기술, 나스카 문명의 수로와 관개 시스템, 모치카 문명의 기술과 미술을 제국 발전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잉카 문명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만약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 건축과 문명을 파괴하지 않고, 잉카인들처럼 좋은 점을 흡수하고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요? 잉카의 흔적만 남은 공간에서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