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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Mar 29. 2024

잃어버린 공중도시의 미스터리 | 페루 마추픽추

1530년대, 잉카제국의 한 도시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춥니다. 도시는 완전히 버려졌고, 금세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집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 안데스 산맥, 그 안에서도 험준한 2400m 고산지대에 위치한 이 도시는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수백 년간을 정글 속에 홀로 숨어있었습니다.


이 도시가 다시 발견된 것은 약 400년이 지난 1911년이었습니다. 미국의 고고학자이자 예일대 교수인 하이럼 빙엄은 잉카제국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잉카 제국의 최후의 항전지인 빌카밤바를 찾기 위해 페루 원정을 떠납니다.


빙엄은 1500년대 기록에서 빌카밤바가 샘물이 솟아 나오는 거대한 백색암석 위에 있다는 내용을 보고 탐사를 진행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원주민 농부를 만났고, 고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빙엄은 농부의 가족 중 한 꼬마의 안내에 따라 산 정상으로 올라갔고, 한 도시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수풀을 치우고 발견한 유적들은 기록 속 빌카밤바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빙엄은 자신이 발견한 곳이 빌카밤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원주민에게 이 도시의 이름을 묻습니다. 원주민은 산의 이름을 묻는 것인 줄 알고 마추픽추라 대답했고, 그 이후 이 도시는 마추픽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마추픽추는 잉카 언어인 케추아어로 오래된 봉우리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빙엄 교수는 이후 빌카밤바를 발견하는 데에도 성공합니다.





잃어버렸던 마추픽추를 발견했지만, 이 도시는 미스터리 투성이었어요. 누가 왜 만들었는지, 이 험한 산꼭대기에 도시를 어떻게 건설한 건지, 그리고 왜 버려졌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거든요.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추픽추의 미스터리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것 같아요.


마추픽추는 1450년대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이 시기는 지난 글 <페루 쿠스코> 편에서 소개한 잉카제국의 첫 번째 황제 파차쿠티가 재위하던 시기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주변 국가들은 파죽지세로 정복하던 파차쿠티 황제가 군사원정 도중에 마추픽추를 황실 휴식처 겸 긴급 대피소 등의 목적으로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곳에는 약 750여 명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고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마추픽추에는 잉카제국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여산 것으로 보인다고 해요. 마추픽추에서 출토된 사람들의 뼈에는 페루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기생충의 흔적이 남아있었대요. 또한 마추 픽추 인근에서 살지 않는 동물들의 뼈가 출토되는 것을 보아, 사람들이 마추 픽추로 올라올 때 가축들도 함께 데리고 온 것으로 보입니다. 즉, 마추픽추는 철저한 계획도시로, 건설을 지시한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이주한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이라는 의미지요.




개인적으로 제일 신기했던 것은 잉카의 건축양식과 석조기술이었습니다. 잉카에는 철제 도구가 전혀 없었는데 돌을 정교하게 잘랐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접착제 없이 돌만 쌓아 올려 거대한 석조 건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인데요. 문자 그대로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이 없이 정교하게 합을 맞췄습니다.



이 도시의 건물을 만들 때 사용한 돌은 마추픽추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돌이라고 해요. 말과 소도 없이, 잉카 사람들은 이 돌을 어떻게 해발 2400m까지 가지고 왔을까요?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돌을 자르고 쌓았을까요? 정말 미스터리 합니다.


건축 외에도 뛰어난 잉카 문명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 또 있었는데요. 계단식 밭과 관개수로, 그리고 해시계와 방위석입니다.


마추픽추에는 인위적으로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밭이 있습니다. 수백 개가 넘는 계단식 밭을 사용해서 산사태나 토양 유실을 최소화하면서 식량을 공급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계단식 밭


마추픽추 지역은 6개월이 우기로 농작물을 키우기에 물이 충분했고, 오히려 물이 넘칠 위험이 있었다고 해요. 잉카인들은 계단식 밭을 여러 층으로 겹겹이 구성해서 홍수에 대비했습니다. 맨 아래에 기반암, 그 위에 모래와 자갈, 맨 위에 흙으로 만든 층으로 자연스럽게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했고 개수로를 만들어 식수를 공급했다고 해요.


개수로


보통 감자나 옥수수를 재배했고, 고산지대의 산바람을 이용한 자연 냉장고를 개발해서 음식을 저장한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서양보다 500년 앞선 기술로, 감자를 6년 동안이나 썩히지 않고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해요.


뿐만 아니라 잉카인들은 천문학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추픽추에서 동서남북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방위석과 동지 때마다 정확히 태양을 가리키는 해시계를 볼 수 있어요.




이처럼 잉카 문명을 꽃피우던 마추픽추의 마지막 미스터리는 1530년대에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스페인이 잉카 제국에 쳐들어와 수도인 쿠스코까지 점령한 시기였습니다. 1532년, 168명의 스페인 군대가 잉카 제국이 들어왔고 이때 유럽 전역을 강타하던 천연두 바이러스를 잉카제국에 퍼뜨렸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면역력이 없던 마추픽추 거주민들이 천연두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이후에 스페인이 험준한 산꼭대기에 있는 마추픽추를 찾지 못해 기억에서 지워졌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마추픽추는 쿠스코에서 불과 8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모두에서 잊혀진 덕택에 유적지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어요.


1983년, 유네스코는 이곳을 ‘인류 건축 기술의 걸작이자, 잉카 문명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합니다.


마추픽추는 미스터리가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 같아요. 80여 년간 잉카 사람들의 터전이었던 이곳을 걸으며, 그들의 삶과 생각을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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