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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Apr 03. 2024

예술가들의 항구 | 칠레 발파라이소

1556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칠레에 상륙한다. 잉카 제국을 정복하고 현재 페루 지역부터 칠레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들은 금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금 대신 아름다운 항구를 발견한다. 항구를 보고 스페인 북쪽에 있는 고향이 떠오른 그들은, 고향의 이름을 따서 발파라이소(Valparaiso)라는 이름을 붙인다. 발파라이소는 천국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발파라이소 (Valparaiso)


시간이 흘러 발파라이소는 태평양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가 되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가는 방법은 남미의 남쪽 끝, 칠레의 남쪽을 거쳐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칠레 남쪽 지방이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 풍랑에 부서지거나 고장 난 배들은 발파라이소에 와서 배를 수리하고 다시 목적지로 출발했다. 발파라이소 항구가 커지면서 유럽에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왔고, 해운업과 상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집을 지을 재료가 없던 이주민들은 항구에서 선박이나 컨테이너를 만들 때 쓰는 철판을 주워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후에 철판에 다양한 색상의 페인트가 입혀지고, 그림과 그라피티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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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온 아티스트들은 교회나 성당이 아닌, 골목에서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유럽의 화풍과 암묵적인 규칙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발파라이소 어디를 가든 벽화와 그라피티를 볼 수 있다. 추상화부터 군부 독재, 경찰과 시민들과의 싸움, 일상생활과 생각을 담은 그림까지 다양하다. 그림을 하나하나에 시대가 담겨있다. 거리의 작품들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유네스코는 특정한 작품이 아닌 골목을 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Cerro Alegre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마주쳤다. Cerro Alegre는 행복한 언덕이라는 뜻인데, 아이들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들만의 놀이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공부를 하라는 말씀이 없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놀이터와 집 앞마당에서 놀았던 기억이 많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놀이터에 가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처음 만나는 아이들도 함께 놀다 보면 금방 친구가 되었다. 놀이터와 집 앞마당에서 나는 근두운을 탄 손오공이 되고, 라푼젤이 되고, 천사소녀 네티가 되고, 호나우두가 되었다. 시계도 휴대폰도 없었던 시절, 정신없이 놀다가 엄마가 부르면 동생들과 저녁을 먹고 또 집에서 놀곤 했다.


언제부턴가 인생에서 놀이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낮아졌다. 고등학교 때는 놀고 나면 죄책감을 느꼈고, 대학교 때는 일주일에 이틀은 자지 않고 세미나를 준비했다. 입사 후에는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을 한 적도 있다. 


사람은 노동이 아닌 놀이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한다. 놀이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핵심은 자발성, 주체성, 즐거움인 것 같다. 이해관계를 떠나 목적 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하는 행위가 놀이다. 행복한 언덕의 아이들을 보며 존재의 의미와 놀이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잘 놀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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