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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Apr 05. 2024

음식이 주는 위안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여행이 늘 즐거운 기억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 여행의 시작이 그랬다.


입국심사관은 한 나라에 입국한 후 대화를 나누는 첫 번째 현지인이다. 대부분의 경우, 무표정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도장을 찍어준다. 운이 좋은 경우는, 친절한 심사관을 만나 웃으며 여행을 이어가게 된다. 오늘은 반대의 경우였다. 그의 태도와 표정 때문에 불쾌해졌다. 그는 아마 지금까지 수천 명의 사람을 만났을 것이고 나를 기억도 못할 것이다. 똑같은 일의 반복 때문에 지쳤던 걸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날을 세우는 것이 것일까, 아니면 그냥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친절함이 최고의 무기라고 믿는다. 무기를 잃지 말아야지 생각을 하며 나만의 가드를 올리고 길을 나섰다.


그때부터 역경이 시작되었다. 3만 원짜리 심카드를 샀는데 사용할 수가 없다. 우버가 잡히기 않아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탔는데, 호텔에 도착하니 141달러 (19만 원)를 요구했다. 우버 앱에서 본 가격은 25,000원이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어쩔 수 없어서 200달러를 내밀었다. 그때 택시 기사의 허술한 마술이

시작되었다. 200달러를 의자 밑으로 떨어뜨리더니 나에게 2달러를 내밀었다. 200달러가 아니라 2달러를 냈으니 200달러를 다시 달라는 말인 것 같았다. 실랑이 끝에 결국 나는 200달러 (27만 원)을 잃었다. 그래, 마술쇼를 본 셈 치자.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갇히면서 데미지가 추가로 쌓였다. 마침 화장실에 오는 사람이 없어 꽤 오랫동안 구조를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하루를 끝내고 싶지 않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위안을 받기로 했다.


Pisca는 아르헨티나 국기 모양 외관이 귀여운 레스토랑이다.



여기에서 엠파나다로 시작했다. 엠파나다는 원래는 스페인 북부 지방에서 유래한 음식인데, 스페인 식민지였던 남미에 널리 전파되었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밀가루에 달걀과 소금을 넣어 반죽한 후 밀대로 밀어주고, 속을 채운 후 오븐에 굽거나 튀기면 된다. 속은 나라마다 다른데, 아르헨티나 북부는 소고기,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은 양고기를 주로 넣는다고 한다.


엠파나다 (Empanada)


두 번째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마테숍을 발견했다.



마테는 남미가 원산지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음료다. 마테잎을 컵에 넣어 우려낸 후, 메탈로 된 빨대로 마신다고 한다. 각성 효과가 있어 커피처럼 아침이나 식후에 먹는다. 마테는 친목용 차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이 경기 후에 담소를 나누며 마시기 위해서 마테를 가져간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마테는 일상이다.


두 번째 레스토랑은 도냐 토타 (Doña Tota)였다. 도냐 토타는 현지인들을 위한 곳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모여서 축구를 보거나, 일요일에 가족과 식사를 하는 공간이다.


도냐 토타 (Doña Tota)


부에노스 아이레스 곳곳의 레스토랑에서는 세라믹 펭귄을 볼 수 있다. 1930년대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대규모로 이민을 오면서, 와인의 수요가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당시 도매상이나 레스토랑에서는 다마후아나스라고 불리는 거대하고 무거운 유리병에 와인을 담았다. 20리터씩 와인을 넣을 수도 있는 크기이다 보니, 사용하기가 불편했다. 와인을 따르기 위한 작은 항아리가 필요했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동물 모양으로 된 병들을 만들었는데, 기린, 코끼리, 펭귄병 중에 펭귄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음식은 밀라네사를 주문했다. 치킨 슈니첼이다. 루가 음식을 설명해 주었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만들어진 음식은 아니지만, 이주민으로 이루어진 아르헨티나를 잘 보여주는 음식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다. 레몬즙을 뿌려 먹으니 상큼했다.


Milanesa


루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소금병을 옮길 때 손에서 손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도 알려줬다. 운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소금을 옮길 때는 테이블 위에 놓고, 다음 사람이 가져갈 수 있게 하라는 팁도 알려줬다.


세 번째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소셜 클럽에 들렀다. 이 건물에 있는 소셜 클럽은 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탈리안 소셜 클럽이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이루던 것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고 한다. 축구 클럽 멤버를 모집하기도 하고, 바비큐를 구워 먹거나, 운동을 같이 한다고 했다.


소셜 클럽


작전 타임을 가지고 있는 미래의 메시들을 한참 바라보며, 오래된 전통을 유지하고 서로 모여 사는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레스토랑은 라 파보리타 (La Favorita)였는데, 건축 양식부터 옛날 패키지까지 과거 아르헨티나를 잘 구현한 곳이었다.


라 파보리타 (La Favorita)


Tortilla De Patatas는 감자 오믈렛이다. 스페인에서 온 음식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아주 자주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집에서 할머니나 엄마가 늘 만들어주시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소울푸드다.  

 


아르헨티나에서 소고기 스테이크가 빠질 수 없다. 아르헨티나는 1인당 1년 소고기 소비량이 100kg에 육박한다고 한다. 양질의 소고기를 한국의 10분의 1 가격이면 먹을 수 있다. 나라 자체가 최적의 지형과 환경 조건을 갖춘 거대한 목장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아르헨티나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했다. 아르헨티나는 횟수 제한 없이 아이스크림 샘플을 맛볼 수 있게 해 준다. 그 관대함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좋은 음식과 사람들로 큰 위안을 받았다. 하루를 좋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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