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를 관찰하다 보니 애정이 생겼습니다. 시부야의 키워드는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시부야에서 발견한 5가지 연결을 소개합니다.
도쿄 시부야의 사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교차로로 꼽힙니다. 일반 사거리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요, 사거리를 에워싸는 횡단보도들에 더해 대각선 횡단보도가 하나 더 있습니다. 따라서, 신호가 바뀔 때는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람들이 길을 건넙니다. 45초 동안 많을 때는 3천 명이 길을 함께 건넌다고 해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움직임이 주는 힘과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 단순한 풍경을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전망대까지 이용하는 것 같아요.
이 건널목에 잠시 모였다가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횡단보도 같은 리더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적지에 빠르게 가고 싶을 때 찾아가는 리더, 초록불 사인으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리더, 그리고 팀원들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리더요.
최고의 반려견 영화로 꼽히는 '하치 이야기'를 아시나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일본 영화도 있고 미국 영화도 있습니다. 하치는 1923년 일본의 아키타현에서 태어났고, 이듬해 도쿄대학의 우에노 교수에게 입양되어 도쿄 시부야에서 함께 살게 됩니다. 우에노 교수는 하치를 살뜰하게 돌보았고, 아주 귀여워하셨대요. 둘은 정이 깊어졌고, 하치는 매일 출퇴근길 배웅을 합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하치가 집에서 시부야역까지 배웅을 하고 퇴근 시간이면 역으로 마중을 나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매일 주인을 배웅하고 마중 나오는 개. 역무원들도 역전의 장사꾼들도 모두 하치를 신기하게 여겼다고 해요.
하지만, 둘의 동행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1925년 어느 날, 우에노 교수가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게 되셨거든요. 하치는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계속 기다립니다. 아침이면 배웅이라도 하듯 시부야역으로 나가고, 저녁에는 시부야역 개찰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인을 기다렸대요.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더 이상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이 없으면 그제야 일어나 몸을 돌렸다고 합니다. 교수의 부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며 하치를 아사쿠사의 친척집에 맡겼지만, 하치는 탈출을 해서 몇 시간을 걸어 시부야역으로 돌아왔대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9년이 흐릅니다. 1년 반 동안의 교감을 평생 기억하고, 주인을 평생 기다린 거예요.
일본 전역에 시부야역의 하치 이야기가 알려졌고, 하치는 변하지 않는 충의의 상징이 됩니다. 아사히 신문에 하치의 기사가 실린 후, 하치를 보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도덕 교과서에 하치의 사연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하치의 이미지를 담은 굿즈가 팔렸고, 사람들은 하치에게 존경을 의미를 담아 ‘공(公)’을 붙여 ‘하치코’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해요. 1934년에는 하치의 충의를 기리는 동상이 시부야역에 세워졌고, 동상 제막식에는 하치도 참석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치 동상은 1944년 10월에 철거됩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며 일본군은 동상들을 녹여 금속을 충당하기 시작했고, 하치 동상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1948년, 일본견 보존회는 성금을 모아 하치의 동상을 재건합니다. 현재 볼 수 있는 동상은 이때 만들어진 동상이라고 해요.
하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시부야의 공식 마스코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칠순의 공원이 재탄생하여, 시부야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미야시타 파크의 이야기입니다.
미야시타 공원은 1953년 개장했습니다. 1964년에는 공원 옆 시부야강이 배수로로 바뀌며 현재 위치로 옮겨져 도쿄 최초의 옥상 정원이 됩니다. 하지만 미야시타 공원은 그리 크게 사랑받지는 못했어요. 시부야의 주요 상업시설과는 떨어져 있었고, 그러다 보니 노숙자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되었거든요. 시부야구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츠이 부동산과 손을 잡고 공원을 재개발합니다. 공원과 상업시설, 호텔과 주차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입체도시공원'을 지향했고, 현재의 모습으로 2020년에 재개장했습니다. 현재 미야시타파크는 330m 길이의 공원을 품은 커다란 하나의 복합 쇼핑몰처럼 느껴집니다.
1층에서 3층에는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브랜드들과 체험형 매장들을 입점시켰습니다. 이 매장들이 미야시타 파크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줍니다. 공원과의 연속성을 위해 쇼핑몰을 아웃도어형으로 디자인했어요. 건물의 외벽 없이 외부 통로를 두어 상업시설 내부와 외부의 단절을 없앴고, 나무를 곳곳에 배치하여 공원과의 연속성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계단과 브리지를 두어 쇼핑을 하다가 공원에서 쉬고, 공원을 걷다가 다시 상업시설에 편히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시각적 변주를 통해 지루함을 없애고, 자연 속에서 휴식할 수 있도록 하여 이 공간에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 거예요.
가야 할 이유가 있고, 공간의 일체감 안에서의 시선의 변주로 즐거움을 주며, 공원을 활용하여 머무를 이유를 주는 곳. 공간의 연결이 주는 시너지가 미야시타 파크가 명소가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시퀀스는 서로 연관된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흐름이 있는 서사를 의미합니다. 씬들이 이어져 만드는 독립된 이야기이자, 영화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책에 비유하면 연결되는 문장과 문단의 합으로 이루어진 한 장 (Chapter)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건축에서의 시퀀스는 공간을 차례로 지나 마지막 공간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건축물의 이야기 서사를 뜻합니다. 알쓸신잡 2에서 유현준 교수님이 설명해 주신 적이 있어요.
시퀀스 호텔은 미야시타 파크 안에 들어선 호텔입니다. 4층에 있는 공원을 끝까지 걸으면 호텔의 4층 로비로 이어져요. 미야시타 파크를 앞마당 삼은 호텔입니다. 시퀀스 호텔은 고객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만의 스토리, 즉 시퀀스를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도시와 사람을 연결합니다.
시퀀스 호텔은 '마음을 담은 연결 (Heartfelt connections)'이라는 철학에 'Open', 'Smart', 그리고 'Culture' 3가지 컨셉을 더했습니다.
OPEN: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
우선 호텔과 공원의 경계를 없앴습니다. 공원이 있는 4층에서 걸어서 호텔에 도착하면, 카페이자 바인 벨리 파크 스탠드가 있습니다. 호텔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을 넘어서 들어가면 체크인을 할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호텔과 공원을 자연스럽게 연결했습니다. 미야시타 파크의 상업시설과 공원, 그리고 공원과 호텔을 연결하는 카페를 차례로 지나, 마지막 로비에 도착했을 때 완성되는 시퀀스가 보입니다.
또한, 도미토리 식의 벙커룸부터 스위트룸까지 다양한 룸 형태를 갖추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모두에게 열린 공간인 것입니다.
SMART: 사려 깊고 스마트한 체류
시퀀스 호텔의 체크인 시간은 오후 5시, 체크아웃 시간은 오후 2시입니다. 밤에도 빛나는 시부야를 밤늦게 즐기고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침 식사는 오후 12시까지 여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체류 시간을 변경하여 새로운 시퀀스를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CULTURE: 도시 문화 체험
시퀀스 호텔은 지역 예술품을 전시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에 도시의 역사를 녹였습니다. 매일 로컬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를 초대하고, 로컬 음식을 제공하는 커뮤니티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투숙객을 연결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다음에 시부야에 방문하면 시퀀스 호텔에서 묵어보려고 합니다. 시퀀스 호텔이 연결해 줄 이야기들이 궁금해서요.
페퍼파롤은 2019년 문을 연 일본 최초의 로봇 카페입니다. 카페에 들어서면 로봇 페퍼가 손님을 맞이합니다.
이곳에는 소프트뱅크가 만든 다양한 로봇들이 있습니다. Pepper는 입구에서 마중을 하고, 손님의 테이블에서 소통을 하는 로봇입니다. Servi는 배선 로봇으로 주문한 요리를 고객이 있는 자리까지 운반합니다. Whiz는 살균 청소 로봇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하여 바닥을 청소합니다.
테이블마다 로봇 페퍼가 하나씩 배치됩니다. 페퍼는 손님과 대화를 하거나, 노래와 춤을 선보이거나, 게임을 주도합니다. 일본어, 영어, 중국어 메뉴가 있는데, 영어로 대화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내장된 카메라로 손님의 표정, 나이, 성별, 감정을 읽고 상황에 맞는 대사를 한다고 하는데 일본어를 하지 못해 충분히 즐기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대신 페퍼가 여러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춰주었습니다.
저녁에는 로봇 아이돌 The Robots의 군무도 볼 수 있다고 해요.
로봇과 사람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신선했습니다. 다만, 아직 더 보완할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입구에서 자리 배치도, 음식 서빙도 로봇이 아닌 사람 서버가 진행했고, 음식 주문은 개인 휴대폰을 사용해서 QR 코드로 처리했어요. 입구부터 계산까지 모든 부분이 더 포괄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더 긍정적인 경험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연결과 시도는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호기심을 갖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