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줄곧 외국에 나가 살고 싶었는데 엄마는 내가 밥 먹는 걸 볼 때마다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이야기해왔다. 치킨, 햄버거, 피자, 파스타를 좋아하는데 나름대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왔던 나의 추측도 이제는 완전히 빗겨나가 버린 걸 깨닫고 말았다. 새내기 시절,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홍대에 있는 술집에 갔었다. 분위기도 화려하고 창원에서는 영 볼 수 없었던 모습에 우리 둘 다 들떠있었다. 받아 든 메뉴판에는 한국 메뉴보다 멕시코 메뉴가 더 많았고 그중 무난한 치킨을 골랐다. 치킨이 무난한 메뉴이기도 하고 메뉴판 설명으로 토종 한국인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맛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반쯤 농담으로 이걸로 외국에 나가서 살 수 있을지 시험해보면 되겠다고 했다. 평소에는 숨도 안 쉬고 달려드는 치킨인데 딱 두 조각밖에 못 먹었다. 토종 한국인이구나. 그날부터 누군가 향신료 좋아해? 하고 묻는다면 이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다.
그래도 타코는 좋아한다. 서울에 와서 먹었던 음식 중에 기억에 남는 게 타코다.
서울 사람들은 창원에도 가로수길이 있는 걸 알까? 아마 창원이라는 지역명도 몰라 부산 옆에 있어, 하고 설명하는 상황에서 전혀 기대하지는 않는다. 가로수길 짝퉁이 아니냐며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창원에도 가로수길이 있답니다.
창원시(창원 안의 창원) 최고의 관광지처럼 불리는 용지공원을 지나가면-도대체 왜 유명한 걸까? 동네 공원일뿐인데.- 가로수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은 길이 보인다. 길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골목 구석구석에 맛집들이 숨어있다. 값비싼 식당과 카페가 번갈아가며 자리를 차지한다.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좀 떨어져 있는 곳인데-지방에서는 도보가 아니게 되면 무조건 멀다-대학생이 되고는 자주 찾게 되었다.
놀랍게도 내가 자주 다니고, 같은 초중고를 나온 친구들이 즐비한 상남동에는 제대로 된 식당이라고는 몇 개 없고 온통 술집뿐이다. 아직까지 상남동에서 밥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게 신기할 뿐이다. 그러니 '제대로'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고 싶다면 다들 가로수길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것도 다섯 번 정도 가면 거기서 거기라서 간 곳을 또 가는 패턴이 반복되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의 설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재수를 시작했던 4월이었다. 그러니까 수능을 망쳐서 11월부터 2월까지 내리 울다가, 그럼에도 여태 노력한 게 억울해서 숙제를 미뤄둔 아이의 기분으로 펑펑 놀다가, 3월이 되어서야 공부를 다시 시작했지만 그 몇 달 사이에 전부 까먹어서 모의고사 점수는 엉망진창으로 받아버렸던, 끝이 보이지 않는 시작에 선 4월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막상 만난다고 해도 주제가 너무 달라 이야기할 게 없었고 각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본인의 삶을 견뎌내기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는 부러움과 수치스러움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2월까지만 해도 같은 곳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서로 사는 세계가 달라진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고생하지 않는 3월은 처음이라 그것도 나름대로 편안했다.
하지만 무소속은 나를 붕 뜬것처럼 만들었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했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재수생'. 학원이나 독서실에 등록된 것도 아니니 처음으로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못했다. 남들에게는 두리뭉실하게 '학생'이라는 호칭으로 통일시켜버렸지만 내면에는 불안함이 있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소속한 단체로 자신을 소개하면 안 된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단체는 영원하지 않고 나는 단체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세상은 모두 속한 단체만 변할 뿐이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식어 없이 나는 나로 존재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걸쳐지지 못한 내가 창피해서,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길에서 동창을 만나면 먼저 피하게 되었고 나의 또래애들을 보면 움츠러들었다. 바깥에 나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 무렵 부모님이 머리도 식힐 겸 데려간 곳이 가로수길이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그 거리는 완벽해 보였다. 셀 수도 없이 예쁜 카페들과 다양한 메뉴들에 눈을 번뜩였는데, 처음이니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SNS를 열심히 뒤졌다. 음식이 너무 튀지 않으면서 나름 개성 있고 연령대 관계없이 평이 좋은 곳, 타코 집이었다.
티비에서나 보던 특이한 음식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신기했다. 맛을 상상했다는 것도 우습지만 이런 맛이지 않을까? 하고 내 마음대로 그려나갔던 기대들이 있었다.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이제 너무 오래되어서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것만은 기억난다. 음식에 외국과 국내가 있던가? 그런 생각만 들었다. 신선한 채소들과 속재료들은 궁합이 잘 맞았다. 타국 음식에 깐깐한 부모님의 입에도 합격이었다. 맛있는 재료들을 넘치도록 담아 입안을 가득 채우는 게 쌈밥과 비슷했다.
그날은 묘하게 기분이 들떴고 음식은 맛있었다. 오랜만에 내가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었다.
기억이 좋으면 음식은 다시 찾게 되어있다. 나는 타코에는 때가 없었다. 타코라면 언제든지 좋다는 마음뿐이었다. 창원에서 친구와 먹어도 서울에서 친구와 먹어도 맛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연남동에서 친구와 타코를 먹었다. 타코를 처음 먹는다는 친구는 재료들을 모두 비벼버렸는데 내가 너무 놀라는 바람에 친구가 오히려 당황했다. 나는 해보지 못한 생각이어서였다. 친구에게는 하나하나 덜어먹는 것보다 이게 편할지도 모르겠다고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는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진심이었다. 오히려 먹기가 편하고 시간도 줄었다.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신선한 재료들의 맛이었다. 누군가 나서서 이게 멕시코 음식이야, 하고 알려주지 않는다면 멕시코 음식인지, 한국 음식인지도 구분되지 않을, 하지만 타코라는 건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나와 다르게 타코는 타코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어느 것도 되지 못해 속상할 때, 타코가 생각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