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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ug 11. 2021

냉면

대를 거쳐, 시간을 넘어






탄수화물 러버인 나로서는 밥은 물론 면도 뛰어난 선택지이다. 향신료 냄새가 강한 쌀국수와 콩국이 들어가는 콩국수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면요리를 좋아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면이라면 우호적으로 대한다. 그중 내가 정말 좋아하지만 가장 드물게 먹는 건 냉면이다.





냉면은 유달리 사연이 많다. 면 중에서도 아픈 손가락에 속한다. 우리 집만의 특성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와 나는 언제나 ‘최고의 맛집’을 찾는다. 식당을 자주 바꾸기보다 단골 맛집을 간다. 메뉴의 결정이 행선지의 결정과 다름없다.




고기 먹자, 피자 먹자, 치킨 먹자, 하면 상황에 따라 우리의 단골 맛집 중 하나를 선정한다. -서울에 올라오고 선택지가 넓어지긴 했지만 일단 창원에서-냉면은 선택지가 딱 두 개밖에 없는 오리지널 음식이다.






첫 번째 집은 중국집 냉면이다. 내가 이사 온 게 먼저였는지 식당이 먼저 생겼는지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된 단골이다. 내 기억의 시작에 따르면 최소 13년 이상이다. 그곳의 냉면은 전형적인 중국집 냉면이라고 들었다. 매콤하고 시원하다. 면도 씹기 편하다. 내가 후에 먹어본 서울의 맛집 냉면들과 견줘도 꿀리지 않았다. 우리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냉면 맛집이지만 그래도 이 냉면은 ‘배달용’이다.





두 번째 집이 바로 진짜 오리지널 냉면이다. 떡갈비와 냉면을 같이 파는 집으로 진해에서 꽤 유명한 맛집이다. 옆에 교회가, 맞은편에는 큰 슈퍼가 있는 위치인데 원래 교회 자리에는 내가 다니던 유치원이 있었다. 그 길을 쭉 따라가면 내가 살던 빌라가 있다. 그곳은 항상 그리운 느낌이 든다. 내가 반가워했고, 그리워했고, 애틋해한 곳이다. 이제는 가라앉아버린 내 유년시절이 있다. 그것 때문인지 더 정이 간다.






떡갈비가 먹고 싶거나 냉면이 먹고 싶을 때면 계절에 관계없이 우리는 그 집으로 향했었다. 특이한 점은 그 집은 주로 좌식이었는데 창가 자리들은 땅이 파여있었다. 그러니까, 걸터앉는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테이블을 따라 네모난 모양으로 아래가 뚫려있었다. 족욕탕에 다리를 담그고 앉아있는 모양이 되는 게 신기했다. 좌식으로 앉아 다리가 저릴 일도 없었고 의자에 앉는 것처럼 구속되는 불편함도 없었다. 그래서 그 식당을 더 선호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이미 잘려버린 냉면...





냉면은 커다란 대접에 나온다. 진짜 대접이다. 낮게 퍼져있는 대접. 그 위에 살얼음이 있는 동치미 육수와 냉면, 반으로 잘린 계란이 들어있다. 눈으로만 봐도 시원한 모양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 면은 실처럼 얇다. 색은 밝은 회색이다 보니 어릴 적에는 동화 속 드레스의 은실 같다는 생각도 했다. 반짝거리고 얇다는 점이 비슷했다.







하지만 이런 냉면은 나와 상성이 맞지 않았다. 주로 밥을 굉장히 빨리 먹고-5분이면 충분하다-면은 더 빨리 먹는-3분이면 충분하다-나는 냉면만은 한 시간 내내 먹었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었다.




어릴 적 냉면을 먹다가 목에 걸렸던 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 질긴 면을 씹고 있으면 이 면이 언제 내 숨을 멈추게 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한 입에 털어 넣는 미친 짓은 하지 않고 아주 적게, 몇 가닥씩 집어먹는다. 이걸로 부모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빨리 먹었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말에 이제는 납득을 한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음미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진해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곳이라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해에 데려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를 보여주고 싶다. 좋아하는 길가, 나무, 공기를 느끼게 하고 싶다. 이 집도 딱 그런 집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해에서 냉면집을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생의, 중학생의, 고등학생의, 대학생의 내가 언제나 여름을 나는 곳.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가족을 꾸리게 된다면 그 사람들도 데리고 가고 싶다. 대를 거쳐 알려주고 싶은 곳이다. 봄에는 꽃이 좋아 장사가 잘되고 여름엔 날이 더워 장사가 잘된다. 가을과 겨울도 달콤한 떡갈비와 시원한 냉면의 조화를 잊지 못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뜨끈한 국밥도 같이 판다.






그러니 이곳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티에 대를 거쳐 장사하는 집이라고 나오고, 나이 든 내가 30년 단골이라며 인터뷰를 할지도 모른다. 메뉴판에서 만두가 없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파진 바닥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이곳을 그리워할 것이다. 계속 이곳을 찾을 것이다.





맛은 여전하다. 내 기억도 머물게 되겠지. 이 맛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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