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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Oct 04. 2021

모카빵

음식을 나쁘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

요즘 사람들은, 같은 표현은 쓰는 건 농담일 때가 대부분이고 아주 가끔 나도 진담으로 쓰곤 한다. 그런 말이 절로 나올 때마다 나도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서 자제하려 한다. -이것도 이미 꼰대인가?- 그럼에도 참을 수 없어서 하고 마는 말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뭘 먹을 줄을 몰라! 모카빵 속에 들어있는 건포도가 제일 싫다니!"


어릴 적에는 몰랐지만 크고 나니 모카빵 안에 있는 건포도가 끔찍하고 재앙이라며, 악마의 젖꼭지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나를 상대로 몰래카메라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있어서 모카빵 속의 건포도는 진흙 속에서 찾아낸 진주 같았다고나 할까. 먹게 되면 입이 반짝거린다.




지금도 누구나 놀랄만한 편식쟁이지만 어릴 적에는 지금보다 까다로웠다. 지금은 이래 봬도 우리 엄마의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 사회화된 '편식쟁이'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우선 야채는 당연히 먹지 않았고 고기도 먹지 않았다. 고기도 먹지 않았냐고? 진심이다. 편식쟁이에 더해 예민한 편이었기 때문에 비계나 힘줄도 먹지 못했다. 용케 아직까지 별 탈이 없다. 인스턴트 음식에 엄격한 엄마는 다행히 빵에는 관대했다. 하지만 엄마가 관대해도 내가 그러질 못했다. 팥이 싫어서 온갖 종류의 팥빵이 싫었고, 야채가 싫으니 피자빵도 싫었다. 겉면이 딱딱한 게 싫어서-바삭한 게 아니라 딱딱한 거다-파이 종류나 크루아상도 싫었다. 얘 빵 좋아하는 거 맞아? 싶겠지만 뽀얗고 부드러운 빵은 참 좋아했다.



모카빵은 이상하게 좋았다. 겉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하지만, 속에는 건포도가 속속 박혀있지만, 내가 싫어하는 커피 향이 나지만 맛있었다. 딱딱한 겉면은 씹을수록 달콤했고 속은 촉촉한 커피 향이 났다. 씹을 때마다 가끔 달콤 끈적한 건포도가 씹혔다. 흰 우유를 곁들여먹으면 어떤 진수성찬보다 좋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언제나 '간식타임'이 있었다. 빵이라든가, 빵이라든가, 과일이든가. 온통 그런 거만 먹었다. 가장 많이 쟁반 위에 올라온 건 단연컨대 모카빵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모카빵만 먹은 것 같다. 매일 가는 슈퍼에서 건포도가 듬뿍 들어간 모카빵을 팔았고 엄마는 매일 모카빵을 사 왔다.



모카빵으로 알 수 있었던 건 나의 성장 속도였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간식으로 6분의 1만큼, 그다음에는 4분의 1만큼, 그다음에는 절반을, 결국에는 혼자서 하나를 먹어치웠다. 내가 커가는 만큼 모카빵을 먹는 속도도 빨라졌다. 입 안이 터질 정도로 우걱우걱 모카빵을 쑤셔 넣으면 내 우울과 불행도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모카빵이 쓰지 않다는 게 위안이었다. 딱딱하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입 안에서 씹히는 건포도를 곱씹으면 현실은 꿈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난 그때가 그립다.


해가 쨍쨍한 날, 집에 돌아오면 손발을 씻고 간식을 먹는다. 학교에 있었던 일을 하나둘씩 엄마와 언니에게 이야기하며 빵을 입에 한가득 물고 씹는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촉촉한 빵들과 함께 삼킨다. 집에서 그러고 있는 동안에는 온 세상의 불행이 나와 멀어진 기분이다. 나는 오래도록 그 기분을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요새는 모카빵 속 건포도를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건포도가 들어있는 모카빵은 찾기 어렵다. 모카빵은 더 이상 그런 맛이 아니다. 그 기분을 다시 누릴 수 있는 빵집을 만나게 된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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