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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Sep 30. 2020

대학생은 어디로 가야하나요?

시간을 쓰는 방법

1학년, 새내기. 모두가 좋아하면서 부러워하는 단어. 고등학생들에게는 자유의 상징이며 그 이상의 성인들에게는 청춘의 상징이다. 가장 순수하고 좋을 시절이라고 이야기한다.



 미디어에서는 이 시절에 대한 환상을 열심히 심어주었다. 캠퍼스에서 연인과 함께 벚꽃을 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밤낮없이 술을 먹기도 한다. MT에서 친구를 사귀고, 종강 후에는 다같이 여행을 가고. 그 안에서 소소한 핑크빛 기류도 생겨난다.





물론 이런 새내기, 스러운 생각이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 역시 학교에서 유정 선배-웹툰 치즈인더트랩의 남자 주인공. 캠퍼스 남친의 대표적 인물이다-를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의 1학년은 각박했다.




 지방에서 기차로만 3시간 정도로 올라와야하는 나는 이 낯선 도시에 버려진 셈이었다. 1.1 : 1 이라는 경쟁률 속에서 기어코 탈락을 받아내고 말아 기숙사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도 몰랐고 예정에도 없었던 나의 자취가 시작되었다. 








어딘가에서 인서울 대학에는 반은 재수생이고, 반은 지방애들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재수생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지방애들은 더 찾기 힘들었다. 너도 나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살들, 경기도나 서울에서 통학을 하는 수도권 사람들이었다.



 그 중 재밌었던 건 경기도 애들은 자신을 분당, 판교 등의 이름으로 이야기하거나 집 근처 지하철 역 이름을 댔다. 비아냥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창원이라고 해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마치 경기도는 모두가 알 것처럼 이야기한다. 창원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부산 옆이야, 라는 말을 열 번 정도 반복하게되면 결국 그 뒤로는 도시의 이름도 사라진 채 그저 부산 옆이라는 말만 남게 된다. 















집과 학교만 반복하던 나는, 어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온전히 주어진 '나'의 시간이었다. 재작년까지는 학교에 다녔다. 학교는 9시, 그리고 고3이 되고 나서는 10시에 마쳤다. 작년에는 집에 있었다. 재수 기간 동안 나의 시간은 타임테이블이라는 종이 위에서 칼처럼 잘려 그려졌다. 그럼 올해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4시 15분이었다. 그 때부터 다음날 오전 수업인 10시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다. 





친구들도 가끔 만났지만 아주 가끔이었다. 대부분 대학 친구들은 학교를 마치면 평소와 같이 '집'에 돌아갔다. 나의 임시 거처 같은 서울집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온 진짜 '집'이었다. 그 집에 가면 반겨주는 가족들이 있었고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다.




6평 남짓 방은 빨래를 널면 움직이지 못한다. 나는 가족들이 없고, 고등학교 친구들도 볼 수 없다. 그 좁은 방에서 나는 그저 시간을 죽이며 보냈다.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도 없었고 시간을 보내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항상 해야하는 일이 정해져 있는 삶을 살았다. '대학 진학'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공부를 하고, 또 공부를 했다. 가끔 다른 일을 할때에도 해야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해야하는 일을 외면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속이 불편했지만 둘 다 없을 때는 불편할 수도 없었다. 그저 텅 비어버린 냄비를 두들기는 기분이었다.





여태까지는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지, 하고 움직일 수 없게 우리를 묶어놓았다가 갑자기 풀어주면서 이제는 성인이니까 알아서 해, 라는 것 같았다. 평생을 헛간 아래에서 지내던 소를 갑자기 초원 한 가운데에 풀어주고 사라진 것 같다. 초원에서 뭘 먹어야하는지도, 뭐가 있는 지도 모른 채. 







하지만 말그대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난 언제나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아이였으니. 일정한 목표 아래에서 알아서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고 해나가는 사람이었다. 단지 목표가 사라졌을 뿐이다. 목표를 다시 세웠다. 일단 가까운 미래는 취직. 조금 더 먼, 궁극적인 미래는 나의 행복. 그렇게 목표를 세우고 나니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더 질퍽하게 놀고, 질퍽하게 노력하자고 생각해왔는데 그것과는 다른 시간을 살게 되었다. 




이 재난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나의 길을 만들고 있다. 중국 배우에 빠지게 되어 시작한 중국어는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었고, 대외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마스코트는 다시 그림을 그릴 용기를 주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한 자전거는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바람을 알려주었다.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클래식은 바이올린을 더듬거려가며 새로 배우고 있다. 그리고, 내 친구가 선물해준 책을 읽고 글을 다시 쓰게 되었다.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발을 딛는 곳은 길이다. 내 행복은 나만 찾을 수 있다.




 그 누구도 처음으로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성인'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주체적이어야 했다. 처음에는 초원에 풀어진 소들도 어디로 가야할지, 어떤 풀을 먹어야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이것저것 먹어보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여보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소들도 점차 적응해갔을 것이다. 





언제까지 돌봐달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스무살들은, 스물한 살들은, 교복을 벗은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라는 것.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지 못해서 방황하는 나이라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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