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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Sep 27. 2020

나의 운수 좋은 날

하루를 예측할 수는 없다

목요일이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잠에서 깼다. 집 근처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서관에 갈까? 엄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읽는 건 기쁨이었고 그 기쁨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서야 다시 찾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도서관의 810번대를 좋아해온 나는 책을 고르는 방식이 확고했다. 추천도서나 지정도서 같은 걸 읽는 것도 좋았지만, 나만의 방법이 있다. 800번대부터 어슬렁거리면서 책을 훑는다. 제목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제목이 나오면 멈췄다. 그리고 책을 꺼낸다. 가끔 뒤에는 줄거리가 적혀있기도 했다. 그것도 참고 대상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책을 펼친 후였다. 아무 페이지나 펼친 후 그 페이지를 읽는다. 그 부분이 재밌으면 책을 빌리고 재미가 없으면 다시 책을 꽂았다. 재밌는 책은 어느 부분이라도 재밌어야한다는 게 내 신조였다. 그런 식으로 빌린 책들은 대체로 재밌었다. 가끔 가다 재미없는 책이 있기도 했지만 이 방법이 재밌어서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드라이브 스루를 진행할 때는 그런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서관이 열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래. 도착한 도서관은 활기가 넘쳤다. 새로 리모델링한 모습에서 예전의 낡은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 곳에서 또 책들을 골랐다. 


여러 개의 책을 끌어안고 상가로 향했다. 그 근처는 내가 얼마 전까지 살던 곳이었다. 내 평생을 살아온 집인만큼 산책하는 길도 즐거웠다. 태양은 따스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나무가 우거지니 맑은 공기는 덤이었다. 나의 오전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오후도 그랬을까?








물론 그러지는 못했다. 운수 좋은 날의 결말이 처참했던 것처럼, 나의 운수 좋은 날도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요새 자전거를 타고 있다. 실력이 어느 정도냐 물으면 어린아이가 겨우 배우기 시작하는 정도이다.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서 매번 사람이 없는 아침이나, 저녁시간에 연습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하늘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상황만 뺀다면, 완벽한 날씨였다.





그런데 목요일에는 이상하게 사람이 많았다. 아파트 주위를 돌다가 맞은편의 여자아이가 멈추지 않아서 다칠 뻔했다. 물론 이건 양쪽 모두의 과실이다. 내가 피한 방향이랑 같은 방향으로 그 애가 피하는 바람에 위험했다. 씽씽이-달리 이걸 뭐라고 불러야할 지 모르겠다-를 멈추거나 내리면 될 터인데 내가 피할 때까지 나를 향해 돌진하는 바람에 내가 섰다. 갑자기 서는 일은 익숙하지 않아 아직도 엉덩이가 아프다. 그 애는 내가 서는 것을 보고 자기도 멈추더니 못 본 척 그저 갈 길을 가버렸다. 이상하게 유치한 마음이 솟아 화가 났다. 그 이후에도 돌던 중 갑자기 반대편에서 여자아이가 튀어나왔다. 결국 가로수에 들이박을 뻔했다. 그 애도 내가 멈추는 걸 보더니 다시 갈 길을 갔다. 


잘못이 없지만 무심한 아이들에게 화가 났다. 나는 자전거를 탈 때 한없이 예민해진다. 내가 언제 어떻게 실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 생각이 없다. 그게 이기적이게도 서러웠다. 




계속되는 실수와 일어나지 않은 사고들은 나를 갉아먹었다. 나 그래도 잘하고 있지 않았나, 하고 쌓아올린 자존감들은 그렇게 조금씩 부서져 사라졌다. 아무 실력도 책임도 없이 나는 도로에 나선 것이다. 


두렵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계속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도 두렵고 내가 넘어지는 것도 두려웠다. 아픈 것도 싫고, 사고가 나는 것도 두려웠다. 나는 그저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도 두렵다는 걸 외면하고 싶지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내몰린 상태에서 나는 사람이 걸어오는 아파트 앞 도로가 무서웠고 사잇길을 선택했다. 나는 그게 도망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도망이었다. 그냥 두려움을 외면했다는 걸 포장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결국 나는 사잇길의 내리막길에서 겁을 먹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려간 길에서 쌓아온 두려움이 터져버린 것이다. 빠르게 내려가는 순간 나의 모든 용기는 사라졌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방향을 꺾지 못하면 바로 앞에 있는 유리문에 부딪혀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때, 나는 손을 뻗었다. 쇠기둥이 손에 강하게 부딪혔다. 타닷, 하고 울려퍼지는 소리가 강렬했다. 손을 부딪힌 충격으로 속도가 느려진 내 몸은 유리문에 부딪히지는 않았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안장은 돌아가고 손은 얼얼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죽을 뻔 했다는 걸 깨달았다. 간신히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먹이 제대로 쥐어지지 않고 손가락이 떨렸다. 두개골 골절에 비하면 싼 값이었지만 그래도 서러웠다. 










얄팍한 자존감은 깎여내려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참 무모하고 한심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제 밤까지도 연필이 쥐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래서 금요일은 나가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도 날씨가 무척이나 좋다. 하늘은 파랗고 날씨는 좋다. 아마 자전거를 달리며 마시는 공기는 더욱 상쾌할 것이다. 




하지만 나가지 않음으로서 나는 나를 쉬게 해주었다. 나의 자존감은 돌아오지 않을테지만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은 하루가 지나면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난 나의 욕구를 이기지 못해 이렇게 무리한 시간을 살고 있으니, 토요일은 아마 욕구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또 다시 자전거를 타면 된다. 다시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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