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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Oct 11. 2020

리더가 된다는 건

리더십은 노력한다고 생기는 건 아닙니다

오늘은 실수를 했다. 타대학교 학회와의 회의가 2시여서 부학회장과 미리 만나 회의 준비를 했다. 시간이 애매해서 가족들이 칼국수를 먹는데도 끼지 못했다. 회의 끝나면 해줄게,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방문을 닫았었다. 대충 논의가 끝나고 나니 2시였다. 화상회의의 링크를 보냈지만 다들 카톡을 읽지 않았는지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짜증을 낼 무렵 답장이 왔다. 저희 회의 내일 아닌가요?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가 없었다. 확인해보니 일요일 두 시에 만나자는 말에 내가 넵, 하고 대답을 했다. 



아. 처음으로 회의 날짜를 착각했다. 우리가 바빠서 착각했던 거라며 부학회장이 위로를 했다. 내일은 대신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겠다. 애써 위안을 삼고 헤어졌다.     




부학회장 말이 맞았다. 우리는 요새 너무 바빴다. 참 보잘것도 없는 것들이 일은 어찌나 많은지 자잘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 부장을 했다가 호되게 당한 나는 학회장이 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학회장을 원하지 않았고 내 짝 선배가 학회장이었고 나는 부탁을 거절하는 게 싫었다. 사실 학회장이 없으면 불편한 건 정작 우리 기수였지 짝 선배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게 좀 아이러니했다. 학회장을 맡을 애가 없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은 이제 학회에 남지 않는 애였고 학회장을 하기 싫어 어떤 핑계로도 발을 빼는 애들은 학회에 남는 애들이었다. 




내가 학회장을 맡은 이유는 단순했다. 1년 동안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학회가 굴러가게끔 온 힘을 다해온 그 애가 속상할까 봐였다. 본인이 열심히 노력했는데 다들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 속상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애가 왜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인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나였으면 분명 너네 마음대로 해라, 하고 무시해버렸을 텐데.





          

어쨌든 학회장이 됐다. 친구들은 가끔 오, 학회장~이라며 놀렸다. 인수인계를 받고 자잘한 업무를 여러 번했다. 학회뿐만 아니라 타 학회끼리의 활동에서는 화가 나는 일들도 많았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이러다 휴학하는 게 아닐까 싶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반쪽짜리 학회장이 됐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5월에 학회원들을 뽑았다. 그리고 9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을 준비하는 동안, 활동을 하는 지금, 부학회장을 가족만큼 자주 봤다. 내가 학회원일 때는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작년의 학회장 애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어떻게 이 일을 1년 내내 했는지 모르겠다. 일의 규모는 작지 않고 신경 써야 할 것은 더 많다. 자잘한 것들이 끝없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때로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전의 학회장 애는 나를 보고 화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걸 감추지 못해서 티가 났나 보다. 나는 역시 자질이 없다.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고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있으면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특히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지금은 더 그렇다.      






리더라는 게 뭔지 궁금했다.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대단하게 느껴졌다. 



막상 해보니까 별 거다. 진짜 별 게 맞다. 매주 듣는 수업보다 매주 하는 회의가 더 많은 것 같다. 



그저 리더는 노력한다. 내가 길을 깔아줄 테니까, 니네 원하는 대로 걸어봐. 길을 만들어준다. 길을 만들 때는 그 위를 지나는 이들이 다치지 않게 돌부리도 없애고 움푹 파진 부분도 없게 한다.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문제가 없도록 줄여준다. 그 일을 한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이름 아래에 있어서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한다. 하나도 즐겁지 않다. 괴롭다. 하기 싫다. 그래도 일을 한다. 내가 리더 자리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렇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다. 등 떠밀려 리더 자리에 올라서 넘어지지 않고 서 있는 게 고작이다. 때로는 학회원들을 배려하지 못할 때도 있다. 참 무능한 리더다. 학회원들은 착하다. 그래서 우리를 나름 이해해준다. 그게 또 고맙다.                










이제 두 달 정도 남았다. 10월의 시험기간을 지나고 타학교와의 교류 사업이 끝나면 거의 작별이다. 반쪽짜리 학회장이지만 많이도 배웠다. 다시 돌아가면 절대 안 하겠지만 남은 기간 동안은 최선을 다할 거다. 리더십도 없고 책임감도 별로 없지만 60일 동안은 견딜 거다.                




나는 이전 학회장과는 달라서 애정도 별로 없고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다. 성격이 좋지도 않고 삐딱하고 이기적이다. 그래서 이번에 아무도 학회장을 하기 싫다면 내 일도 아닌데 이젠 알아서 하라고 할 생각이다. 그게 나의 방식이니까. 끝날 때쯤에는 뭐라도 나아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기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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