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을 꺼내보고 싶은 기분
친구가 미술학원에 다녔다. 가끔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며 부럽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그런 마음이 참을 수 없게 들어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미술학원 가고 싶어."
엄마는 그래, 하고 말았다.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 날 미술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선생님은 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다음 주부터 갈게요, 강하게 대답했다.
미술학원을 처음 다닌 건 열아홉 살 겨울이었다. 수능을 망쳤지만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어릴 적부터 가고 싶었던 미술학원을 가기로 했다. 집 근처에는 학교가 많아서인지 학원도 많았는데 그중에 성인을 받으면서 위치가 가까운 곳을 찾았다.
그러다가 찾아간 게 우리 집 바로 뒤에 있는 미술학원이었다. 우리 집 바로 앞에서부터 50m 정도 될까 말까 한 거리였다. 거짓말 안 하고 딱 30초가 걸리는 거리.
학원은 작았지만 키가 작은 선생님이 친절했고 분위기가 노곤 노곤했다. 12만 원이라는 수강료를 듣고 나서 바로 결제를 했다. 두 달에서 세 달 동안,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학원에 갔다.
가서 처음에는 선을 긋고, 도형을 그렸다. 그리고 과일을 그리고, 캔을 그리고, 풍경을 그렸다. 그곳은 입시미술보다는 동네의 미술학원 같은 느낌이어서인지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가 주요 고객들이었는데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을 만나는 건 괜히 어색했다.
아이들은 서로 친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같이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시끄럽게 떠들다가 혼이 나고. 그런 나이와 그런 관계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게 오랜만이었다.
자그마하고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어쩌면 툭 튀어나온 못처럼, 혼자 크기가 맞지 않는 책처럼, 이상한 존재였다. 그때는 더더욱 그랬다.
아이들은 가끔 나한테 와서 말을 걸기도 하고, 이거 먹으라고 젤리를 주고 가기도 했다. 가장 곤란했던 질문은 언니는 나보다 잘 그려? 였다. 초등학생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대답해야 만족스러워할지 몰라서 그냥 웃었다.
그 작은 세계에 내가 끼어들 일은 없겠지만 다리 하나만큼은 걸친 기분이다. 저게 무슨 별건가 싶다가도 눈에 힘을 줘가며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니 그때는 나도 그랬다는 게 생각이 났다. 사소한 것으로도 즐거워하고 사소한 것으로도 싸운다. 나는 크면서 다툰 적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보니 나도 많이 다퉜던 것 같다.
그 나이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스케치북을 누가 더 많이 썼는지가 중요하고 누가 더 빨리 진도를 나가는지가 중요하고 누가 더 리코더를 잘하는지가 중요하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모든 걸 까맣게 잊고만 있었다.
학원에 가는 길은 가깝지가 않다. 멀다.
자전거를 세우고 길을 따라가면서 이상하게 흥이 났다. 스무 살 가을에 바로 이사를 왔다. 그때는 모든 게 지긋지긋해서 10년을 넘게 산 동네 같은 건 당장이라도 떠나버리고 싶었다. 새 집에 이사 온 당일에도, 피곤하다고 8시에 잠에 들어버릴 정도로 무신경했다.
그런데 학원에 가는 첫날에는 참 이상했다. 나는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나 학교를 마치면 바로 집에 오지 않고 어딘가에 앉아서, 혹은 서서 친구들과 몇 분이나 떠들다가 집에 들어온 적이 많았다. 그 장소는 때로는 집 앞이기도 했고 아니면 아파트 뒤 주차장 또는 아파트 사이의 벤치 기도 했다.
그 장소들이 눈에 밟혀서 괜히 아련했다. 이사 간 이후로 한 번도 옛날 집을 온 적이 없어서 더 그랬다. 옛날 집에 가서 문을 열면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나온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적응력이 좋아서 그래도 신경 쓰지 않고 지냈는데 막상 다시 보게 되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곳에 나의 추억이 남아있었다. 내가 살아온 세월들이 다 그곳에 녹아있었다. 어쩔 수 없는 고향이구나.
학원 선생님은 반갑게 나를 맞이해줬다. 오랜만이니까 소묘를 해볼까요, 뭉툭해진 연필을 깎았다. 물론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지만.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해야 하는 일들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히 다른 세계선에 놓이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이 가끔 그림을 고쳐주고, 아이들이 재잘거린다. 배경음악으로는 어느 채널인지 모르는 라디오가 나온다. 재밌는 사연도 있고, 퀴즈를 맞추기도 하고, 시간을 알려주기도 한다.
학원에 가게 된 건 마음을 놓고 싶어서였다. 뭐든 좋으니 벗어나고 싶었다. 가게 되니 그곳에는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있었고 잊을 수 없는 나의 학창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곁에 없는 이들과의 추억도 많았다.
어렸을 때라면 몰라도 나이가 들수록 연필을 쓸 일이 없었다. 깎는 소리가 사각사각한 연필은 한 번 부러지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부러지는 소리도 섬뜩하다. 뚝, 하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손이 꺾인다.
연필은 샤프보다는 편하지 않다. 귀찮기도 하고, 선명하게 나오지 않는 게 짜증이 난다. 하지만 가끔 연필을 꺼내보고 싶은 날이 있다. 쓰는 소리도 사각사각해서 내가 무언갈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연필이 그리운 날이 있다. 잘하고 있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쓰고 싶어서 쓰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