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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Dec 20. 2022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다는 게

언제까지 그리워하기만 해야 하나

지금 생각하면 분명히 우울증의 신호였다. 향수병이라면 향수병, 우울증이라면 우울증. 머리만 대면 잘 자고 어디서든 잘 먹고 잘 웃던 내가 밤마다 뒤척이던 건, 가끔 눈물이 나서 울고, 무기력한 나를 견디는 게 힘들었던 건 모두 부적응의 신호였다.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내가 겪었던 우울이 깊었던 탓에 행복하다고 느끼기가 힘들었다. 나는 언제나 그런 상황이 오면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한다. 아예 도망가버리는 거. 도망가는 것만큼 비겁하고 편한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몇 번이나 가족들과 친구들과 상담하고 이야기하고. 그러고도 스스로도 해답을 찾지 못해 방황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뿐이라는 게 원통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손을 놓게 되었다. 어중간한 방법들은 나를 종종 더 깊게 가라앉게 만들었다. 분명 시간을 낭비한다는 걸 알면서도 의미 있는 걸 찾지 못해 서성이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더 나은 선택지를 찾지 못하는. 눈을 가리고 길을 걸어 가는 것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한참 괴로워하던 11월 중순, 가족들이 비행기 표를 끊어줬다. 가족이라는 건 신기하다. 똑같은 말이나 행동이라도 더 의지가 되고 힘이 된다. 연말에 내가 그런 돈을 내가 갈 가치가 있을까. 자신 없는 내 물음에 엄마 아빠는 당장 표를 끊으라고 이야기했다. 보고 싶으니까 오라고. 결국 나는 일주일치 수업을 통으로 빠지기로 했고 일주 일자리 휴가를 갖기로 했다.





표를 끊을 때 엄마는 말했다. 한 달 있다가 한국에 온다는 생각만으로 분명 더 괜찮아질 거라고, 괜찮아지지 않는다면 한 달만 더 버텼다가 2월에 바로 귀국하면 되는 거라고. 지혜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분명 우리 엄마다. 누구보다 지혜롭고 현명한 엄마. 엄마의 말은 옳았다. 귀국이라는 일정이 생기자 나는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 과감해졌고 어떤 부분에서는 더 나태해졌다. 그것들이 섞여서 즐거움을 만들어냈다. 성취와는 조금 먼 삶이었지만 언제부터 성취만 있는 삶을 살았다고. 




괜찮았다. 꽤.





한국에 오기 며칠 전이되자 오히려 돌아가기 싫어지기까지 했다. 내 생활은 이곳에 있었다. 빡빡하고 지루하고 피곤한 하루가 내 일상이 된 것이다. 이 일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니 또 두려웠다. 난 환경이 바뀌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걱정과 두려움은 잠까지 멀리 쫓아버렸고 출국 전날에는 새벽까지 한참 친구와 떠들었다. 유성이 내리는 밤이었다. 











공항 밖으로 뛰쳐나가자마자 보인 건 엄마였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엄마를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그때는 살짝 눈물이 날뻔했다. 그럼에도 씩씩해야만 했다. 약해진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오기 싫다고 생각한 집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 아빠랑 몇 시간을 떠들었다. 일본의 내 방은 시끄럽다. 창문 밑에는 하천이 흐르고 그 옆은 도로. 창문은 방음이 되지 않아서 처음 온 며칠을 이어폰을 끼고 잘 정도였다. 커다란 창문 옆에 침대가 있는 탓에 깊게 자는 것도 힘들었다. 아침에 되면 커튼 사이로 어떻게든 빛이 한 줌 새어 들어왔다. 빛 때문이 아니더라도 깊게 자지 못했다. 밤을 새운 다음날이라도 수면 시간은 8시간을 못 넘겼고 중간에 한 번씩은 꼭 깼다. 낮잠도 길게 못 잤다.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피곤했다. 피로와 피곤은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기만 해서 매일같이 피곤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한국의 내 방은 조용했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피로는 해소됐고 자기 싫어도 자꾸 잠이 왔다. 엄마는 긴장이 풀렸다고 했다. 내 긴장은 얼마나 오래 쌓여있었던 걸까. 나는 매일 8시간을 자고도 낮잠을 꼬박꼬박 2시간씩 잤다. 6시간밖에 못 잔 지금이 9시간을 잔 일본에서보다 쌩쌩하다.




거실에 다 같이 누워 티비를 본다. 새벽에 아빠랑 라면을 끓여먹는다. 엄마랑 같이 점심을 먹고 쇼핑을 다닌다. 오후가 되면 낮잠을 잔다. 심심하면 시장에 나가서 간식을 사 먹는다. 엄마가 우리 강아지, 하고 이불을 덮어준다. 아빠는 내 옆에 와서 눕는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가족이 그리웠나 보다.



어제부터 울적해지더니 오늘은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가족은 멀리 서봐야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걸 잘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내가 돌아올 곳이 창원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1학년 때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창원에는 내 자리가 없다. 평생을 나고자란 곳을 나는 거쳐가기만 한다. 창원에 있는 관계는 비교적 쉽게 포기하게 된다. 나는 대학을 서울에서 다니니까, 서울에서 취직할 거니까, 지금은 일본에 있으니까. 관계를 포기할 이유는 너무 많다. 




내가 운동을 하며 친해졌던 언니들도 모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초등학생처럼 유치한 질투심이 있지만 나는 이내 그 관계를 내려두게 된다. 나에게는 질투할 자격도 없다. 나는 그들의 옆에 계속 있을 수가 없다. 우리의 관계는 옅어질 일만 남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뿐이다. 아직 옅어지지 않았다고, 여기 흔적이 있지 않냐고 박박 우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작년 12월부터, 올해 9월까지 사랑했던 창원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그 허울에 집착했다. 그러니까 나는 창원을 그리워해서는 안되고 그 안에 있는 관계들도 그리워해서는 안된다. 엄마 아빠만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족마저 없다면 창원은 더 이상 창원이 아니다. 집이라는 그 작은 낙원마저 저버릴 수가 없다.




서울에 가서는 창원을 그리워하고 일본에 가서는 서울을 그리워하고. 내가 정말 그리워하는 건 어느 쪽일까. 외로움의 범위가 커질수록 외로움이 없는 게 제일 좋다는 선택지는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일본 생활은 내년 여름이면 끝날 거라는 걸 알아서..........





나는 어디에 정착할 수 있을까. 너무 사랑해버리면 괴로운 건 내쪽이다. 괴롭다. 외롭다. 평생을 살다가 뽑혀나간 것처럼 괴로워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창원에는 가족들밖에 없고 서울에는 친구들밖에 없고 일본에는 아무것도 없다. 영원히 합쳐질 수 없는 관계들만이 남아있다. 어디에도 소속되어있다는 건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다는 것과 같다. 발 하나 걸쳐있는 것만으로는 그 안에 있는 사람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가 없다. 그것보다 사무치는 외로움만을 느낄 뿐이다.




어디든 사랑하고 싶다. 어디든 사랑하고 싶지 않다.

나도 어딘가에 뿌리를 박고 싶다. 영원히 옮기고 싶지 않은 뿌리를 내려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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