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넋두리
나는 언제나 무리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마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르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왜 다를 수밖에 없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다. 머리로는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만큼이 되지 않는지 자꾸 질문하게 된다. 분명 나와 다른 사람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알고 있지만 또다시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는 점에서 아는 건 참 어렵다.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 매일 운동을 나오고 나머지 운동을 자처해서 하는 나에게 누군가 무언가 준비하냐고 물어봤다. 왜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세요? 나는 당황했다. 지금의 나는 너무 부족하고 잘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분함과 억울함은 논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노력밖에 답이 없다. 그 단순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불평도 사치다. 해야 할 일은 불평이 아니라 노력이다. 불평과 짜증은 답이 아니다.
물어온 사람은 나보다 잘하고 나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서 어이가 없었다. 더 노력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게 정말 웃겼다. 난 잘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노력하기도 어려운데. 나중이 되어서야 그 사람이 무언가를 준비하는 쪽이라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깨달았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늘어가는 나도 발전하는 나도 좋지만 역시 내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종일 운동하고 또 운동하고 손이 터지고 찢어지고 토하면서도 운동하는 소년들을 쭉 동경해왔다. 오타쿠 인생이란 별 수 없다. 나는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줄곧 사랑했고 그 무언가가 '운동'이었다. 야구, 농구, 배구, 다양한 스포츠 만화들을 좋아한 만큼 내가 투영할 수 있는, 좋아하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의 유형이 있었다.
처음부터 강했다는 것도 좋아하지만 날 울게 만드는 건 언제나 못하는데 노력해서 잘하게 되었다는, 성공 스토리다. 그게 누군가에게 성공으로 비추어질 때까지의 과정은 잔혹하기 그지없다. 작가가 사건보다 잔인한 인물의 심정을 하나하나 파헤쳐줄 때마다 나는 더욱 인물에게 몰입하게 되고 나라면, 하는 가정을 몇 번이나 하게 된다. 내가 인물을 사랑하게 되는 지점은 나의 가정에서 내가 포기하고 실패했지만 인물은 그러지 않은 지점이다. 누가 봐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좌절하게 되는 상황에서 결국 한 발을 더 딛고 만다. 고통스럽고 아프다. 하지만 그들은 또 한 발을 딛고 디뎌서 성공으로 향한다. 그 잔인한 과정을 함께한 독자는 팬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다.
스포츠 만화는 굉장히 교훈적이다. 욕심쟁이들만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가 교훈을 주려하지 않아도 팬이 되어버린 나는 그들을 닮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존경할만한 자세나 의지를 배우려 한다. 어떤 부분에서든 그 자세나 의지를 실천할 수 있지만 운동만큼 원초적인 것도 없다.
숨이 터지고 찢어질 때마다 한 발 더를 생각한다. 손바닥이 다 찢어지고 피가 나도, 다시 한번 매달린다. 아픔을 즐기는 게 아니다. 아픔보다 연습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즐긴다. 고통을 참고 연습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되는 나를 좋아하고. 온통 좋아하게 되는 것의 굴레다. 찢어진 손바닥만큼이나 매력적인 아픔은 없다.
무지성으로 사랑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을 좋아하게 될 때다. 나는 대체적으로 내가 감수할 수 있는 피해는 최대한 감수하려는 편인데 다른 사람은 그러지 않다는 걸 비교적 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은 좋아하는 게 두렵다. 몇 번이나 겪었지만 출구가 없다.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그게 사랑의 매력이라는 건 알지만 나에게 있어서 사랑은, 날 망치는 것뿐이었다.
사랑에 빠진 나는 무모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에너지 하나 만으로 육체적 피로는 물론 정신적 고통도 빠르게 잊는다. 내가 이루고 있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진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떤 손해도 감수할 수가 있다. 말 그대로 올인하는 성격이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뿐, 내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피곤해도 연락을 소홀히 하지 않고 선물을 준비할 때는 무리해서라도 원하는 걸 주려하고 5분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3시간도 달려갈 것이다.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탈탈 털어서 바치게 될 것이다. 덕질과 다르게 사랑은 이성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라도 사랑하고 싶으면서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 애정이 넘칠 때의 기분은 마약을 한 것처럼 좋다. 내 기분이 0에서 100까지 있다면 최소 90을 넘긴 상태가 유지되어 있다. 언제든 100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이 하고 싶다. 하지만 언제든지 -무한대까지 갈 수 있으며 사랑이 사라지거나 위태로워지기라도 한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이것도 어릴 적의 얘기니 지금은 그때보다 낫겠지만...... 별로 기대되지는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사랑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는 대체적으로 이성적이고 이런 상태가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일에는 무모하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멈출 수 없다면 마음껏 사랑하기로 했다. 지금 이 크기의 사랑이 자주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 사랑하는 게 있는 건 아니니까. 있는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고 박살 나기로 했다. 부서지는 쪽도 나쁘진 않다.
나의 사랑은 사랑 두 글자처럼 단순하지 않다.
사랑에도 다른 이름이 있다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