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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n 20. 2022

두려움은 나의 힘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두려움은 성큼, 빠르게 다가온다. 내가 몇 달 동안 준비했던 행사가 이제 코앞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어릴 적부터 문구를 좋아했다. 일주일에 한 번 천오백 원을 받으면 문구점에 갔다. 그 시절은 비싼 샤프를 모으는 게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다. 알록달록한 샤프들과 볼펜, 다이어리........ 난 그런 게 너무 좋았다. 반짝이는 펜들도 좋았고 시간이 지나면 보이지 않아서 특별한 불로 비춰야만 보이는 비밀 볼펜도 좋았다. 그놈의 펜이라는 소릴 듣고 살았으니. 다른 애들이 뭘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문구를 좋아했다. 그거 하나는 확실했다.




문구를 디자인하고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했었다. 내가 문구를 좋아하니까 그랬다. 문구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 살, 재수하던 시절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아주 작은 공모전이 있었다. 내가 빠른 년생인 걸 기뻐한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대학생이 아니라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 해 여름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탔고 2주 가까이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는 문구를 디자인했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아이디어는 마구 샘솟아서 멈추지 않았다. 뜨거운 온도가 지긋지긋했는데도 즐거웠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한동안은 문구를 잊고 살았다. 예쁘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스티커들과 테이프, 볼펜들은 너무 좋아하는데 적당히 잊고 살았다. 서울에서 혼자 살게 된 스물한 살은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새로운 무게의 진로 고민으로 충분히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문구도 좋았지만 광고도 좋았으니까.



그리고 대외활동을 하던 중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만든 캐릭터에 애착을 지니게 됐다. 집 대신에 커다란 유자를 지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줄 달팽이. 내가 만든 창작물을 가장 사랑하게 되는 건 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 창작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게 나라서, 그만큼 더 사랑하게 된다는 걸 몰랐다. 어떻게 하면 더 귀여울지, 더 사랑받을지 고민했다.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도 즐거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의감이 느껴졌다. 어떤 일에는 목표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광고를 계속해서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서도 내가 만든 광고가 나왔으면 좋겠고 내가 만든 광고로 상도 받고 싶다. 내가 쓴 글이 창비 청소년 문학상에 당선되어 청소년 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 중국어를 무척 잘해서 6급을 따고 싶고 원어민들과 무리 없이 대화하고 싶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토투바를 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지금 좇고 있는 것들은 모두 목표가 있었다. 그게 남의 판단이든 나의 판단이든. 다다르게 되는 일정한 수준과 결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림은 아니었다.



그림에서의 목표는 대체로 하나였다. 제대로 된 진짜 '브랜드'가 되는 것. 그걸 하려면 판매가 무조건 동반되어야 했다. 알리고 팔아야 했다. 그래서 3월부터 스티커를 만들기 시작했다. 목표도 만들었다. 일러스트 페어에 나가는 것이다. 쉬운 건 하나도 없었다. 마치 내가 작가의 시선으로 읽었을 때와 독자의 시선으로 읽었을 때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너무 어려웠다. 내가 살피지 않은 부분들을 살펴야 한다는 게 어려웠다. 누군가 처음 시작하는 건 1학년의 마음으로 시작하라고 했지만 교재도 설명도 같이 할 친구도 없는 1학년은 외롭다. 아무튼 외롭다. 나의 외로운 1학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굿즈를 만들려면 어떤 크기로 어떻게 만들고 어떤 업체를 쓸 거고, 어떤 포장지를 쓸 거고 어떻게 홍보를 할 건지. 손바닥만 한 스티커 하나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담겨있다. 글을 쓸 때와는 다른 답답함이 있었다. 글은 이야기의 흐름이 보이니 어느 정도가 되면 하이라이트겠구나, 끝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오는 그림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쓰는 속도는 정해져 있어서 일정 시간이 있으면 일정 분량이 생기는데 그림은 그렇지 않았다. 글이 거대한 흐름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거라면 그림은 작은 작품들은 무한대로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치고 거치고 거치고. 토할 것 같은 하루들 사이에서 깨달았다.




나 그림 그리는 거 안 좋아하는구나.




글은 하루 종일 쓰면 즐겁다.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스트레스받지도 않는다.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하지만 그림은 하루 종일 그리니 지겨웠다. 머리가 아팠다. 손을 움직이는데 신물이 났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명제가 흔들렸다. 이제 누군가 너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 하고 묻는다면 그닥이라고 답할 것만 같다.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답하기는 하는데 정확하게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내가 할 일들은 거의 끝나간다. 이번 주 일요일이 지나고 나면 나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될 것이고, 아마 한동안 그림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다. 대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싶다. 머리를 쓰고 싶다. 내가 해소하고 싶은 것들을 해소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한 편으로는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수능 때랑 비슷하다. 얼른 쳐버렸으면 싶다가도 오지 않았으면 싶다. 나는 수능을 바라는 게 아니라 수능이 끝나고 후련해질 마음을 바라는 거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때처럼 난 두렵다. 인생을 망치는 게 두려웠던 스무 살처럼 나의 노력을 망칠까 봐 무섭다. 학회장을 하면서 깨달은 건데,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한 건 좋아하든 아니든 간에 사랑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나의 경우엔 그렇다. 나는 글을 너무 오랫동안 읽고 너무 오랫동안 써서 결국 끔찍하게 사랑해버렸다. PR도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너무 사랑해버렸다. 지긋지긋한 그림도, 결국 사랑하게 됐다.


중국 공장과 컨택하며 캐릭터 인형도 직접 만들었다.


해야 하는 일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투자했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됐다. 투자한 시간이 길었던 탓에 지금 내 브랜드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있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 브랜드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렵다. 내가 가지고 있는 냉정하고 싸늘한 시선처럼 사람들이 바라볼까 무섭다. 내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온몸으로 뛰어다닌 결과물이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까 봐 슬프다. 예고되지 않은 슬픔을 혼자 끌어안고 있다.




어떤 진실이든 마주하는 게 무섭다. 그래서 이번 주말이 오지 않았으면, 하게 된다. 한 편으로는 얼른 왔으면, 하게 된다. 뭉쳐있는 애정을 흩어질 수 있게 풀어주고 싶어서이다. 문구를 좋아하던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공평하게 흐른다. 끝이 다 와가는 걸 이제야 느낀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말을 빌리자면-두려움은 나의 힘이다. 나에게 쏟아지는 두려움을 발판으로 일어서자.


요즘 들어 내가 좋아하는 날씨만 찾아와서 다행이다. 장마를 직전에 둬서 날은 서늘하고 해는 드문드문 나타난다. 따갑지는 않은데 밝은 하늘이 나의 의욕을 부채질한다. 내가 좋아하는, 내 안의 여름이다. 덕분에 기분 좋은 끝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계속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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