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열음 May 09. 2022

세대만큼 거리를 뒀다

언제나 멀어졌던 건 나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언제부턴가 의문을 품어왔다. 왜 할머니는, 할아버지는, 나에게 잘해주는 걸까? 고작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무게도 내용도 다른 인간관계가 늘어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해되지 않는다. 핏줄이 뭐라고.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내가 상대를 좋아해도, 상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해도 그게 상대를 다 안다는 보장은 되지 않는다. 특히 나는 '친하다'는 허들이 남들보다 비교적 높은 편인데 내가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라진다. 


친하긴 한데 그렇게 친하진 않아. 친하긴 한데 그 정도까지는...? 진짜 친한 건 아니고. 적당히 친한 느낌?

내 비밀의 선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는 그렇게 치부한다. 아마 다들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세상에는 내 모든 걸 알아서 친한 사람, 알지 못하지만 친한 사람, 적당히 친한 사람, 아는 사람 등등으로 구분된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저 분류에 따라서 모두 착착 나뉠 수 있지만 아무래도 가족은 저 틀 안에 넣기 힘들다. 이상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지만 그분들은 친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일 년에 몇 번 만날 뿐이고 만나서 밥을 먹는 게 다다. 아는 건 이름과 얼굴, 식성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의 요약본만 알고 있다. 매일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전혀 모른다. 그래서 남보다도 못한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칠만한 애정을 주시는 걸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리사랑이라는 말도 이해하기엔 멀었다. 내가 그런 애정을 받을만한 사람인가? 나는 언제든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잘해주시는 걸까? 친해질 수는 없는 걸까?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며 교대를 추천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멀어지길 한 발짝, 뭐든 배우고 싶어 하는 할머니를 보고 가까워지길 한 발짝.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거리는 언제나 왔다 갔다 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가지도 않았고 닿을 만큼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그나마도 대학에 가서 외로움을 느끼며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돼서 멀어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언제나 '남'보다도 애매한 사이였으니.


















이번 어버이날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뵀다. 집에서 식사하자는 아빠의 말에 강하게 반발한 덕에-어버이날에 맛있는 걸 먹어야지!-유명 고깃집에서 식사를 했다. 여섯 명이 한 번에 앉을 수 없어 세 명씩 나누어 앉았고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테이블, 나와 언니랑 엄마가 한 테이블에 앉았다. 할머니 집에 가도 무뚝뚝하고 먹고 자기만 하던 아빠는 웬일로 말이 많았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니 '가족'처럼 느껴졌다. 집에서는 맨날 장난만 치고 엄마한테 딱 붙어있는 아빠는 할머니 집에 가면 세상 무뚝뚝했다. 아빠는 엄마랑 살기 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다는데 어땠을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 같았다. 같이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평소보다 훨씬 가족 같았다. 




밥을 먹고는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에 둘러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휴대폰에 대해 질문하셨고 그걸 알려드리다 할머니 휴대폰이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다. 어플 업데이트도 안되고, 업데이트 취소도 안 되는 불량품이었다. 데이터도 아니고 핫스팟에 연결해서 쓰고 있는데도 휴대폰은 일을 못했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그 자리에서 멈춰서 움직이질 않았다. 택시 어플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싶었던 언니와 나는 당황했다.


그 자리에서 우린 휴대폰을 바꿔야 한다는 열띤 논쟁을 벌였다. 할머니가 휴대폰이 느리다고 말씀하신 게 단순한 답답함에 대한 토로라고 생각한 우리 잘못이었다. 무슨 이런 휴대폰이 있냐고 화를 내고 새로운 휴대폰을 알아보면서 나는 조금 즐거웠던 것 같다. 아빠에 대한 얘기를 할 때도 그랬다. 처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다. 대화에 참여했다는 실감이 났다. 




할머니와 헤어지는 게 처음으로 너무 아쉬웠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고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언제든 우리가 나눌 수 있었던 대화였다. 내가 우리 사이에 너무 많은 벽을 뒀나 보다. 세대가 다르니까 대화가 어렵다고 생각했나 보다. 예의 있게 행동하려다 보니 말도 행동도 너무 많이 아껴버렸다. 그런 건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되는 건데.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 찾아뵙고 싶다. 내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지금까지 벌려온 거리를 열심히 줄여나가고 싶다. 보내는 시간도, 봐온 시간도 많은데 난 애초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해질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속마음을 더 듣고 나의 속마음을 더 많이 말하고 싶다. 기회가 있는 한, 아직 늦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관현악실이 없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