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찌개

잊지 못할 날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기에

by 한열음

우리 집에서 사람이 없는 도로를 지나, 터널 하나를 지나가면 나오는 동네. 고향보다도 더 고향 같은 곳이 그곳에 있다. 몇 년 전 마산과 함께 창원으로 통합된 진해이다. 차로 3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지만 터널만 통과하면 고향보다 더 진한 고향의 향기가 있다. 그것은 가끔 분홍빛 벚꽃의 향이기도 하고 가끔은 끝에 있을 바다의 향이기도 하다. 아주 가끔은, 그리운 향이 난다.



아주 어릴 적에 그곳에서 살았다. 내 기억에서 기껏해야 1,2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데도 이상하게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고향 같다. 그곳에서 느끼는 아련한 기분의 이유를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예전에 살던 집은 이제는 외갓집이 되었다. 어릴 적 언니와 잠을 자고 가끔 장난감을 타고 뛰어다니기도 했던 집. 유치원을 마치고 계단을 가로질러 뛰어가던 그 기억은 이제 흐릿해서, 그 기억이 났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다.













죽기 전에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SNS에서 어떤 질문을 봤다. 여행지에 가서 먹을 음식을 고르는 것처럼 나는 프랜차이즈 식당을 빼고, 인스턴트들을 뺐다. 가장 밥이 많이 먹고 싶어 지고 언제 먹어도 맛있는 음식. 외할머니의 게찌개였다.



나는 게찌개를 언제나 [깨찌개], 하고 발음했는데 그게 이상하다는 걸 고등학교 3학년 때 알았다. 학교 급식에 게찌개가 나온 날이었다. 친구가 발음이 왜 그래? 하고 물었다. 그 애가 의식한 이후로 모두가 내 발음이 다르다는 걸 알았듯이, 나도 의식한 이후로 모두가 나와 발음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외할머니도, 엄마도 모두 깨라고 발음했다. 애들을 따라서 게라고 말해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부르면 이름이 영 싱거워진다.



국어 수업을 듣다가 [깨] 발음이 대구에서의 발음이라고 배웠다. 정말 대구 사람들은 나와 같은 발음을 할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경상도에서도 게를 다르게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일부러 나는 게찌개라고 부른다. 의식하면서 연하게 발음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게찌개가 게찌개가 아닌 것 같다. 지금처럼 간장이 배인 짭짤한 맛이 아니라 색만 벌건 별다른 매력이 없는 국물을 가졌을 것 같아서이다.






외할머니는 갈 때마다 게찌개를 해주신다. 그래서 진해에 가면 냄비 하나만큼의 사랑이 놓여있다. 온전한 사랑이다. 이제는 예전과는 아예 다른 맛이 되어버렸지만 천천히 양념을 음미하면 그 안에 숨어있는 옛 조각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감정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에 익숙했다. 워낙 예민한 탓에 잘못짚어낸 적도 여러 번 있지만 있는 것을 없다고 착각한 적은 없었다. 예를 들면 언니를 향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 어릴 적 언니를 낳고 키울 적만 해도 엄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를 낳기 전까지 언니는 외갓집에서 지냈다.




외갓집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이었던 엄마가 낳은 첫 손녀. 언니는 아마 두 분께 잊을 수 없는 행복을 선물해준 사람이다. 그래서 언니에 대한 두 분의 애정은 특히 각별하다. 그것이 어떤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노력 한다한들 어찌 나와 같은 애정을 지닐 수 있을까.



깨닫고 나면 아무렇지 않다. 원래 그런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그곳에서 게찌개가 가득 담긴 냄비 하나만큼이 나에 대한 사랑이다. 게가 철이 좋든, 나쁘든, 가격이 싸든, 비싸든, 크기가 불규칙한 게들이 냄비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에는 아주 작은 게가 담겨있었는데 나는 큰 게보다 오히려 마음이 시큰해졌다.


"야가 좋아해서 게 사러 갔는데 잔 놈들밖에 없드라. 철이 아니라서 그런갑다."


게들은 살을 바르는 것도 힘들어서 밥을 먹는 데는 아주 오래 걸렸다. 확고한 애정의 맛은 매번 달라지지만 그래도 좋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밥을 꽉꽉 눌러 먹었다.



keyword
이전 03화케찹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