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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ug 01. 2020

메밀소바

쌉쌀했던 면과 쌉쌀했던 첫사랑


나는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편이다. 처음에 거부감을 느끼면 그 다음부터는 절대 먹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도 몸이 안 좋으면 못 먹을 때가 있는데, 거북함은 쉽게 잊히지 않아 몇 달이 지나서야 간신히 입에 댈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유일무이하게 나의 ‘불호’를 이겨낸 음식이 있다. 바로 소바이다.       



소바를 처음 먹어본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여름날 학교 급식으로 소바가 나오게 된 것이다. 거무죽죽한 면의 색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의심스럽게 젓가락을 들었다. 국물은 짭짤하고 면은 쌉쌀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쌉쌀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원함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건 좋았지만 아무리 먹어도 입이 쓰고 짰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속으로 결론 지었다. 소바는 두 번 다시 먹지 않을 음식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관현악부에 속해 있었는데 그 중 나의 짝사랑 상대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후배는 당시 내 삶의 전부였고, 나는 그 나이의 아이들이 그렇듯 온 마음을 다 쏟아부었다.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했고 그 후에는 그 시간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사랑을 키웠다. 



등교 시간 전과 점심시간마다 연습이 있었기에 매일 만날 수 있었다. 그 날도 난 후배를 만났다. 점심을 잘 먹었냐는 말에, 일이 있어서 못 먹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데 너무 아쉽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까탈스러운 나라도, 사랑 앞에는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오늘부터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소바였다.



그 주 주말에 엄마를 졸라 소바를 해먹었다. 분명 학교에서 먹었던 건 쓰고 짜기만 해서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는데 집에서 먹은 소바는 시원하고 개운했다. 쌉쌀한 면을 오물오물 씹으며 너는 이런 맛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또 후배를 곱씹었다.      




그 뒤로 여러 일이 겹치는 바람에 졸업 전에 사이가 안 좋아졌다. 모든 걸 제쳐두고 온전히 좋아하기만 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 어려워하기로 했다. 




졸업식 날에도 후배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식이 끝난 후에는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중 눈을 끄는 메뉴가 있었다. 소바였다. 이 날씨에도 용케 소바를 팔고 있었다. 그걸 누가 시키길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내가 선택한 것도 역시 소바였다. 쌉쌀한 면을 국물에 담갔다 꺼내 먹자 입안이 서늘해졌다. 너를 졸업하기 위해서 먹어야지. 그날 먹은 소바는 여태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지금도 나는 소바를 해먹곤 한다. 잿빛 면을 삶고, 시원한 물에 얼음을 띄워 간장을 풀면 완성이다. 이제 너에게서는 완전히 졸업했기에 소바를 먹을 때마다 새로운 기억을 덧씌워나갈 거다. 더 이상 네가 기억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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