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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ug 23. 2020

샌드위치

추억에도 뒷면이 있다

아마 나보다 샌드위치를 많이 먹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일정한 기간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내가 먹은 샌드위치를 쌓으면 내 키 정도는 가뿐히 넘을 것 같다. 샌드위치 마니아라서보다는  단지 고등학교 시절 매일 샌드위치를 먹었기 때문이다.






원래 나에게 샌드위치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가끔씩 엄마가 간식으로 해주는, 슬라이스 햄이 들어가고 야채가 하나도 없는 샌드위치. 쨈을 듬뿍 발라 목이 메일 정도로 달큰하지만 시원한 우유를 마시면 될 일이다. 햄, 치즈, 계란후라이와 쨈이 듬뿍 발린 식빵이 덮고 있는 샌드위치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가족들보다 친구들과 선생님을 더 많이 봤다. 그 시간동안 자주 배가 고팠다. 배만 고프면 문제가 없겠지만 배가 허기졌음을 알리는 소리가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내 가방에는 간식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마 1학년 중후반부터 였을 것 같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매번 배가 고파서 여러 빵들과 과자를 사들고 가는 나에게 엄마가 권유했다.


“샌드위치 싸줄까?”


그 때부터 나는 매일 샌드위치를 싸갔다. 샌드위치만 싸가면 목이 막힌다며 엄마는 주스도 챙겨줬다. 투명한 도시락 통에 들어있는 샌드위치. 그걸 나는 수능 직전까지 먹었다. 처음에는 하나였다. 하지만 학교에는 배고픈 애들이 많았고-애들은 항상 굶주려 있었다-혼자 먹기에도 미안했다. 그렇다고 나눠 먹자니 나 한입, 너 한입하면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샌드위치를 두 개씩 싸주기 시작했다. 나눠먹으라는 게 아니라, 내가 못 먹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하루에 두 개, 일주일에 열 개, 한달이면 40개. 지금 생각해보니 샌드위치 가게가 따로 없는 숫자다. 내 친구들은 이 소식을 반겨했다. 우리에게는 샌드위치 타임이 정해져 있었다. 4교시가 끝나면 밥을 먹고, 8교시가 끝나면 또 밥을 먹는다. 그래서 2교시가 끝났을 때나, 7교시가 끝나면 샌드위치를 먹었다. 엄마는 먹기 좋게 샌드위치를 반으로 잘라서 넣어줬다. 그러면 네 명 혹은 다섯 명이서 하나씩 나눠먹을 수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반친구들과도 먹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여도 먹을래? 하고 묻는 한마디에 대부분 웃으며 다가왔다. 그 시간이 나는 꽤 즐거웠다.



아마 우리 반에서 내가 샌드위치를 먹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축제 때 우리 반의 판매메뉴는 우리 집 샌드위치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의 일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있냐며 레시피를 물어보는 친구들을 위해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해줬다. 엄마는 특별한 건 없다며 웃었다. 나는 사정이 있어 축제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반 아이들의 말로는 대호평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친구들은 장난스럽게 우리집 샌드위치가 먹고싶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가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지만 그 때 엄마가 해준 맛은 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몇 년동안 매일같이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했던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샌드위치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학창시절 특유의 나긋나긋한 기억들. 추억의 뒷면에 엄마의 노력이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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