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열음 Sep 07. 2020

함박스테이크

행복이 숨겨지지 않아

나는 일본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는데 모두 일본의 만화였다. 그렇게 내 삶 속에는 언제나 일본이 존재했다. 내가 봐온 문화는 한국의 것이 아니면 일본의 것들이었다. 가끔 현실을 제쳐두고 만화에 빠지곤 했으니 어쩌면 일본 속의 시간이 더 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일본을 좋아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마음 한 편에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나는 일본으로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작년 여름, 언니와 오사카를 다녀왔다. 여태 다녀온 곳은 도쿄와 후쿠오카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여행 내내 들떠있었다.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은 언니는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키 차이도 거의 나지 않아서 쌍둥이처럼 커왔다. 언니와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 중 한 명이기에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성격이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구석이 없어서 사이가 좋지는 않다. 심지어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났을 무렵, 언니와 단 둘이서 일본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여행은 아주 최악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비행기를 먼저 타고 오는 것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오사카 여행은 시작부터가 힘들었다. 남이 아닌 가족이다보니 쉽게 짜증이 나고 쉽게 화를 냈다. 마냥 솔직해서 이기적이었다. 그래도 나름 잘 지내려고 노력한 덕에 싸우지는 않았다.      


여행 전 언니와 약속했던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삼시 세끼를 잘 챙겨먹자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 끼를 간신히 먹는 언니와는 달리 나는 하루에 세 끼는 물론, 간식부터 야식까지 알차게 챙겨먹는 사람이었다. 특히 여행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게 ‘식’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그 곳에서 유명한 맛집들로 일정을 꽉꽉 채웠다.     


 

그 중에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유명한 함박스테이크 집이 내가 가장 기대하는 곳이었다. 일전에 내가 후쿠오카에 갔을 때, 일정이 바쁘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먹지 못하기도 했고 함박 스테이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맛있게 먹었다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함박 스테이크를 좋아하지 않아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식당을 찾았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식당은 애매한 시간이어서인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친절한 점원의 인사로 들어간 식당은,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함박스테이크는 조리되어 나오는 형태가 아니라 본인이 덜어서 구워먹는 방식이었다. 고기를 입에 넣었을 때 나는 그렇게 즐거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내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는 고기였다. 언니는 내 얼굴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맛있는 거 먹으니까 표정에서 티가 나네.”


내가 맛있는 걸 먹을 때면 행복해하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맛있는 걸 먹어서 행복해했을 뿐인데...........언니는 더 먹으라며 고기를 더 덜어줬다. 철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또 웃으면서 밥을 먹었다.      



여행이 끝난 후 언니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 덕분에 맛있는 걸 많이 먹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 전의 여행에서 우리가 3박 4일동안 제대로 먹었던 건 라멘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번에는 다양한 메뉴의 맛집들을 찾았다. 맛없는 집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 역시도 그 식당들을 모두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그 뒤로 서울에서, 김해에서 그 함박스테이크 집을 만나고는 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그 곳에서 밥을 먹는다. 신기한 건 아무리 먹어도 그 때 일본에서 먹었던 맛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여행의 즐거움이 더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언젠가 후쿠오카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는 또 다른 맛이 날까?     

매거진의 이전글 샌드위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