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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Oct 14. 2020

머랭쿠키

숨길 수 없는 마음이 구워지는 시간




머랭 쿠키를 먹어본 게 언제가 처음이었더라. 정확한 때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중학생 때였다. 집 근처 제과점에서 파는 쿠키는 재밌었다. 바삭하게 씹히지만 어느새 사라락, 사라진다. 솜사탕이랑은 또 다른 신비로움이다. 나는 아마 머랭 쿠키를 좋아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첫사랑에게 선물로 준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한 시간이 3년, 잊지 못한 게 3년, 미련 한 톨까지 다 털어버리는데 2년이 걸렸다. 도합 8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었다. 이건 모두 뒤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줘서 생긴 일이다. 내가 그 애한테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마음을 다 줘서 생긴 일이다. 




좋아하는 게 금세 바뀌는 나인데도 이상하게 사람만은 항상 놓지 못했다. 사람을 구원으로 삼아버린 대가로는 잔혹하지 않나.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쨌든 지금 생각해도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쏟아부었던 사랑을 했다.



 

그러니 그 기억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머랭 쿠키라던가. 












처음에는 좋아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가 결국 인정하게 되었다. 그게 중학교 2학년 말의 이야기였다. 


그 애의 생일은 3월 초였는데 나는 어떻게든 기념일에 의미를 부여해서 뭐든 주고 싶었다. 모두가 사랑에 빠지면 그렇듯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머랭 쿠키를 주기로 결심했다. 용돈이 넉넉한 그 애한테 물질적인 건 그다지 필요해보이지 않아서였다. 



그 애가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만들면 분명 귀엽겠지. 부러 식용색소까지 사와서 쿠키를 만들었다. 우리집에는 휘핑기도, 제대로 된 오븐도 없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반죽을 저었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나 언니한테는 뭐라고 변명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둘 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데 뭐라고 얘기하며 쿠키를 굽는다했을까. 평소에 고마운 게 많아서 그렇다고 했을 것 같기도 하다.



휘핑기도 없이 머랭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때 몸소 깨닫게 되었다. 세 명이서 돌아가며 구웠는데도 팔이 빠질 것 같았다. 다행히 머랭은 우리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다. 온도 설정도 되지 않는 낡은 오븐에 간신히 머랭을 구웠다.




나는 벚꽃색의 귀여운 머랭을 생각했었다. 그 애가 좋아하는 분홍색. 분홍색은 사랑의 색이기도 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통통 튀어올라서 그 애한테 들킬지도 몰랐다. 내가 이만큼이나 널 좋아해, 하고.



하지만 이런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 머랭은 노릇노릇한 황색이 되었다. 달고나 같은 색이었다. 안타까운 건 동그란 달고나와는 다르게 머랭은 상투 과자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색이랑 어우러지니 모양이 참 그랬다. 적어도 벚꽃이나 사랑이 연상되지는 않았다. 이 때부터 내 사랑이 실패할 거라는 징조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븐의 문제였기 때문에 해결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난 그 쿠키를 예쁘게 포장해서 학교에 가지고 갔다. 그걸 본 그 애는 그게 뭐냐며 처음에는 웃었지만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얼마 뒤에는 그거 정말 맛있었어요, 하고 말했다. 물론 모양은 좀 그랬지만.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맛있었다니 다행이라는 말에 그 애는 장난스럽게 웃었었다. 그날은 기분이 달콤했다.










이제 몇 가지 기억들말고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문신을 덮어버리듯 지우려 애를 썼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도, 추억도 잊었지만 그 맛은 잊지 못했다.


오늘은 드디어 주문한 휘핑기가 집에 왔다. 이번엔 아무 색도 넣지 않고, 그 하얀 색 그대로 구워내보려고 한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잔뜩 구울 거다. 그 단맛이 질려서 한동안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먹어야지. 글을 쓰면서도 먹고, 책을 읽으면서도 먹고, 또 행복을 곱씹을 수 있도록. 더 이상 달콤한 악몽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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