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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Nov 04. 2020

고등어

변하지 않는 행복

창원에 붙어있길 좋아하는 나였지만 납득해야만 하는 일로 서울에 와야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인간의 마음이란 건 참 간사하기 짝이 없어서 올라가기 직전까지는 죽어도 가기 싫다는 생각만이 든다. 심지어 고작 10여일을 떠나있는 것뿐인데도 엄마가 잘 다녀오라고 안아주면 괜히 눈물까지 나는 것이다. 떠나기 전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약속도 일부러 잡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올라오게 되면 아, 여기 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긋지긋한 서울.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낯선 곳에서 철저하게 '혼자'이다. 그러면 나는 혼자의 삶에 익숙해져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계속해서 연락하는 엄마아빠가 오히려 귀찮아진다.




서울이 고향이거나 서울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글을 읽고 이렇게까지 서울을 싫어하면서 왜 간거냐고 물을 것 같다. 그저 서울은 나의 학창시절에서 '성공'을 의미했다. 언제나 그렇듯 성공은 거창해보이고 위대해보여서 도저히 실패와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그저 그 빛에만 이끌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름방학으로부터 꽉 채운 두 달만에 서울에 왔다. 아무렇게나 때려넣은 음식들을 버리면서 냉장고 정리를 하던 중, 생선의 머리들이 눈에 보였다. 음식들 사이에 예상치 못한 얼굴이 들어있는 기분이라 웃음이 나왔다.



자취생이 고등어라니 조금 사치스럽다. 아니, 사치스러운 건 둘째치고 집에서도 냄새가 나서 굽기 힘들텐데 왜 그렇게 생선을 고집하는지 의문스러울 것이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거짓말 같겠지만 그랬다. 가끔 캠핑을 가서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돼지고기를 싫어했다.


고기의 식감이 싫었다. 사람들이 흔히들 좋아하는 그 특유의 맛과 식감이 기분나빴다. 소고기는 몇 개만 집어먹으면 물리기 때문에 싫어했다.




그런 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던 것에는 생선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한다. 고등어, 조기, 가자미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구운 물고기라면 물론 아구찜이나 코다리 같은 조림의 음식도 좋았다.




생선은 식감이 언제나 일관됐다. 언제 먹어도, 어디를 먹어도 다 똑같은 맛이기 때문에 거북함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서울에서는 뭘 먹야아할지 알 수 없었다. 여러 번 해본 경험으로는 지독하게 요리에 재능이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요리하냐고 친구가 물어올 정도였다.


서울에 오래 있다보면 가끔 생선이 생각났다. 밥 두공기는 거뜬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맛. 학교 앞 백반 집이 있었지만 돈도 돈이었지만 매번 그 곳까지 가기도 귀찮았다.




큰 집으로 이사온 이후에 엄마는 순살 고등어라면 괜찮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우리 집 냉동고에는 순살 고등어 한 봉지가 들어있게 되었다.





냉동고에서 진공팩에 싸인 고등어 한 마리를 꺼내서 물에 담군다. 살이 말랑말랑해지면 종이호일을 두르고 양면팬에 고등어를 굽는다. 잘 타기 때문에 중간중간 확인해줘야한다.






생선을 해동하고 굽는 데에만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굽는 동안에는 환풍기를 계속 켜둬야 하고 창문도 활짝 열어 환기를 해야한다. 냄새는 삼일 내내 창문을 열어야 빠질 정도라서 한동안은 방에만 처박혀 있어야 한다.




그래도 나는 처음으로 샀던 고등어 한 봉지를 순식간에 비웠다. 따뜻한 밥에 부드러운 고등어 살점 하나를 얹어 먹으면 위안 한 조각을 찾은 것처럼 행복해졌다.



힘든 날에도 가끔 오늘 저녁은 고등어를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면 조금씩 행복해진다. 굽는 내내 힘이 들어도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즐겁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고등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 기분이 든다.


변하지 않는 위안이 남아있다는 건 어쩌면 너무나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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