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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Nov 15. 2020

양송이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비밀이야


서울에서 돌아오고 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 여행이 잡혀있었다. 그래서 한가득 있는 일감만을 창원에 버려둔 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 중 하나로 도망 왔다.




전날 새벽과 당일 오전까지 회의를 진행해 일단 일을 마무리하고 휴대폰은 차에 던져버렸다. 인스타 스토리에 ‘속세를 떠납니다’하고 글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 내 옆에는 벌 하나가 맴돌고 있다. 조그마한 게 꿀벌 같아서 굳이 내쫓지는 않았다. 큰 벌이 오면 도망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의 거대한 취미는 캠핑이었다. 지금은 꽤 흔한 취미지만 우리 가족이 캠핑을 시작한 12년 전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들에게 자연에서 놀게 하고 싶고 가족끼리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엄마 아빠의 협약 아닌 협약으로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용돈을 모아서 장비를 하나둘 사모으고 우리는 가까운 곳으로 자주 떠났다. 아마 한 달에 한 번 정도. 의령, 고성, 밀양...... 그중 우리의 홈그라운드 같은 곳은 의령이었다.






 가장 많이 자리를 잡았던 곳은 입구 근처의 큰 나무 아래였다. 봄이 되면 벚꽃이 만발하는 아주 오래된 나무는 아직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곳에서 언니와 나는 계곡에서 놀기도 하고 장작을 주우며 뛰어다녔다. 가끔은 외할머니가 오셔서 같이 쑥을 캐서 국을 끓였다.











저녁에는 고기와 소시지를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밤이 깊어지면 언니와 나는 텐트에 있었다. 그러면 엄마 아빠가 숯에 구운 밤이나 고구마, 감자를 가져다줬다.

자기 전에는 텐트에 누워서 만화 영화를 봤다.









아침이 되면 숭늉이나 스프를 마시고 캠핑장을 한 바퀴 돌았다. 엄마가 설거지하는 개수대에 따라가서 조잘조잘 떠들기도 했다.         

  



때로는 외삼촌 네와도 같이 캠핑을 했다. 아마도 엄마보다 세 살 정도 어린 외삼촌은 아빠와 비슷하게 캠핑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일곱 이서 캠핑을 했다. 그곳에서도 수영을 하고, 계곡의 얼음을 깨고 꽃구경을 했다.      




어느 집끼리 비교해도 그렇듯, 외삼촌 네의 식탁은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삼촌과 캠핑을 두 번짼가, 세 번째로 갔을 때 맛있는 거라며 양송이를 내밀었다.




불에 익어 아래가 노릇노릇해진 양송이는 맑은 물이 고여있었다. 인연이 되려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야채라면 질색을 하면서 이상하게 그거는 먹어보고 싶었다. 먹어보지 않고 싫어하는 것과 먹어보고 싫어하는 건 다르니까.




삼촌이 시키는 대로 뜨근한 양송이 안에 쌈장을 넣어 앙, 하고 베어 물었다. 푹 익어서 말랑말랑한 양송이는 기묘한 맛이 났다. 맛있었다는 소리다. 그 뒤로 캠핑에서 양송이는 고기와 더불어 빠질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양송이 말고는 어떤 버섯도 입에 대지 않는다. 양송이를 먹게 된 이후 사실 난 버섯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은 망상에 사로잡혀 여러 번 시도해본 전적이 있다. 물론 처참한 실패로 끝이 났다.          



그래서 오히려 양송이는 점점 특별해졌다. 내가 먹는 양송이는 어쩌면 마법의 음식 같기도 하다.





평소에는 절대 먹지 않는 야채. 시계도 없고 문명도 조금 떨어진 곳. 차 소리보다 자갈 밟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더 많이 들리는 곳. 저녁에는 랜턴 불빛이 하나씩 나타나고 각 집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 그리고 뜨거운 숯불 위에서만 노릇노릇 구워진 양송이.







오로지 그곳에서만 양송이를 먹는다. 이번에는 부득이하게 못 먹게 되었지만 다음에는 꼭 다시 나만의 마법을 먹어야지. 내가 양송이를 좋아한다는 건 비밀이다. 신비롭고 까다로운 양송이가 따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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