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세상의 모든 몽글거리는 것들을 사랑한다. 귀가 포실하고, 손과 발이 말랑말랑한 나의 애착 인형. 고등학교 2학년부터 지금까지, 약 4년 동안은 가스파드와 리사가 베개 옆을 차지하고 있다.
항상 옆구리에 끼고 있고 가족 여행을 가는 날이면 둘 중에 한 마리는 나와 함께한다. 밤마다 나의 밤이 외롭지 않게 옆구리가 꽉 차는 느낌을 주는 이 아이들의 호칭은 뭐가 좋을지 고민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들을 애착 인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견해버렸다. 어디선가 그런 단어를 들었던 걸까? 어쨌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스파드는 내 옆구리를 채우고 있다.
우리 가스파드의 사진.
어릴 적부터 나는 품에 가득 차는 느낌을 사랑했다. 가장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애는 ‘곰돌이’였는데 이 친구는 안타깝게도 내 곁에 없다.
곰돌이와 함께 자는 사진
여섯 살 때쯤 우리 집에 온 곰돌이는 갈색 털에, 아주 조그마한 몸집이었다. 어디에서도 제일 예쁠 것 같은 고동색 털과 기다란 팔다리는 나의 행복이었다. 곰돌이와 같이 자는 사진이나 곰돌이와 놀고 있는 사진이 아직도 우리 집 액자에 걸려있을 정도이니.
아마 일곱 살에서 여덟 살이 되던 겨울에 곰돌이를 잃어버렸다. 내 기억에 따르면 언니와 내가 엄마를 찾으러 가겠다고 상가로 향했다. 나는 그날따라 곰돌이와 같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일곱 살에게 일곱 살이란 인형을 들고 다니기엔 너무 어른이었다. 유모차는 너무 눈에 띄고 안고 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나는 나름의 대책을 세웠다. 곰돌이를 겉옷 안에 넣어 겉옷의 지퍼를 잠그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곰돌이의 발바닥을 오른손으로 만지면서 나는 곰돌이가 계속 있다는 걸 확인했다.
상가 근처까지 왔을 때 나는 곰돌이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깨닫고 난 후가 늦은 것처럼 곰돌이는 찾을 수 없었다. 단 1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겨우 6, 7분 정도였다. 그 뒤로 나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때 나는 나무 꼭대기에 걸린 둥지를 바라보며 새가 이불로 가져간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 뒤로도 가끔씩 둥지를 올려다보았다.
곰돌이를 잃어버린 날 울면서 쓴 일기
여간 충격적이었는지 칸을 두 개로 나누면서까지 적었다.
여전히 곰돌이가 너무 보고 싶었던 일곱살
나의 슬픔이 안타까웠는지 엄마는 비슷한 곰돌이를 사주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잃어버린 곰돌이는 외삼촌-머나먼 관계의 외삼촌이다-이 밸런타인데이 때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초콜릿 세트에 사은품처럼 들어있던 아이였다. 그러니 똑같은 인형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느 날 엄마가 비슷한 곰돌이를 사 왔다고 나에게 내민 것은 훗날 나의 두 번째 애착 인형이 되는 곰돌이였다. 잃어버린 것과 부러 같은 이름을 붙였다는 게 일곱 살의 발상 같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지만. 우스운 건 곰돌이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애와는 달리 빛나는 노란색 털이었고, 팔다리가 짧았고, 헤벌쭉 웃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초창기 시절의 복슬복슬한 곰돌이와 곰순이
그런 반감은 오래가지도 않았다. 이름을 붙여주고 애정을 주면 어느덧 나의 것이 되었다. 그 애는 오랫동안이나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함께했다. 여름에는 엄마가 천으로 조끼와 바지를 만들어주었고 겨울에는 뜨개질로 원피스를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있는 곰돌이
언제나 함께 여행을 갔던 곰돌이
곰돌 나라의 세 번째 공주인 곰돌이는 동생들을 헌신적으로 챙길 만큼 착했고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성격도 밝아 다른 나라의 누구라도 그와 금세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곰돌이는 내가 아는 이들 중 가장 올바르고 완벽했다.
그다음으로는 2010년 백호의 해를 기념하여 우리 집에 오게 된 백호 호야는 그 자리를 잠시 위협했지만 친구의 자리를 넘보지는 않았다.
자리를 넘겨주게 된 건 우리 집에 리사가 왔을 때였다. 던킨도너츠에서 ‘가스파드앤리사’와 콜라보로 이벤트를 진행해, 도넛을 사면 인형을 살 수 있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어서 포장지만 벗겨놓았지만 또 갑자기 나는 리사를 사랑하게 되었다. 팔보다 더 큰 귀와 정면에서 바라보면 눈조차 보이지 않는 얼굴. 아빠는 리사의 종을 궁금해했다. 우리 가족은 얘가 개인지, 토끼인지를 가지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얘는 귀가 크니까 토끼지. 무슨 개가 귀가 이렇게 커?”
“꼬리가 이렇게 긴데 개 아니야? 토끼 꼬리는 동그란데.”
인터넷에 치면 한 번에 나올 내용을 질리지도 않고 매번 얘기를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리사를 둘 다 맞다는 뜻에서 개토끼, 라는 종으로 분류해놓았다.
1년 정도 뒤에는 중고사이트에서 발견한 가스파드도 이 집에 오게 되었다. 물론 얘는 까만 개토끼로 불리고 있다.
따뜻하지도 않고 나를 향해 달려들지도 않지만 이 애들을 만지고 있을 때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몽글몽글하고 외롭지 않을 수 있구나. 다음에 또 어떤 아이들이 올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싶다. 너무 많이 안고 다녀서, 너무 많이 쓰다듬어서 예전만큼 복슬거리지도 않고 윤기도 사라졌지만 그것도 사랑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너희가 주는 온기를 잊지 않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