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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Nov 11. 2020

너무나 선명한 술톤

친해지고 싶은 이들에게




올해 들어서 술을 먹은 게 어제로 네 번짼가, 다섯 번짼가 그랬다. 오랜만에 먹은 복소사(복분자+소주+사이다)가 맛있어서 먹다보니 어느 순간 물처럼 마시고 있었다. 집에 갈 때쯤에는 전혀 맨정신이 아니었다. 섞어 먹은 데다 쉴새없이 들이부은 탓에 단지 ‘취한 사람’이 되었다.          





술을 제대로 먹은 건 대학에 가서였다. 그 중 아마 잊지 못할 것 같은, 스물한살의 나날들이 있다. 












대학에 입학한지 2주 정도 되었을 때였다. 의지할 사람 한 명 없는 서울에서 약간 나쁜 일이 있었다. 나쁘다고 하면 나쁘고, 견딜만 하다면 견딜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홀로 있는 대학교 1학년에게는 큰 일이었다. 



    

이걸 학과 친구 중 누군가에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친구 한 명을 붙잡았다. 그 때에는 아마도 가장 친한 친구였다. 대학교에서는 소문이 무서우니까 함부로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걸 1년 먼저 대학을 간 친구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었고 순한 인상의 다정한 친구를 믿고 싶었다.          






그 친구와는 학교 앞 굴다리의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소주 한 병을 도란도란 나누어 마시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보다 친구는 나의 고민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 날의 술자리를 계기로 우리는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내가 학과에서 가장 많이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이다.               







그리고 3월말즈음, 친구 네 명과 함께 헌팅포차에 갔다. 술이 들어가고 나니 오히려 어색함이 줄었다. 그 곳에서 맥주부터 과일 소주, 소주까지 거의 6종류 정도의 술을 시켰다. 섞어마시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던 때였다. 분명 따로 마셨음에도 뱃속에서 섞인 건지 술집 밖을 나설 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흥이 잔뜩 올라서 친구와 어깨 동무를 하고서 강남역을 뛰어다녔다. 




술을 깨기 위해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이 나가떨어진 걸 보고 까르르 웃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웃음이 나왔다. 새벽에는 변기를 붙잡고 업보를 실감했다. 절대 앞으로는 섞어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울었다. 다음 날 간신히 학교에 갔다. 술에 취해 같이 사진을 찍어놓고도 다음날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를 보니 술이 깨고서도 조금 웃겼다.          







5월말에는 작은 실연이 있었다. 그저 미팅에서 만나 연락하던 애와 잘되지 않았을 때 이상하게 들떠있어서 실망감도 컸다. -이 이야기는 꽤 길어서 다음을 기약한다- 어쨌든, 나를 위로해주겠다고 술자리에 남은 애가 있었다. 그 때가 11시 정도였는데 나는 이미 만취상태였다. 고작 주량이 반 병인 주제에 소주를 두 병 가까이 먹었다. 술집에서만 다섯 번, 집에서는 두 번 토했다. 술집에서 집까지 15분 정도를 춤을 추듯 걸었다. 







유독 남아있는 기억은 화장실에서 토를 하고 나온 후, 다른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갔었다. 또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참으며 벽에 기대서 생각했다. 저 사람이 나오면 다시 토해야겠다. 그걸 보니 사람은 아무리 취해도 이성은 남길 수 있는 게 틀림없다. 취해서 못할 짓을 했다는 건 의도적이었다고 아직도 믿고 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의 취기가 날 방방 뛰게 만든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해진다. 쓸데없는 눈치를 보던 나를 떨치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술톤-친구들이 금방 빨개지는 날 볼 때 마다 언니는 술톤이네, 하고 이야기한다-인 내가 좋다. 대신 술을 핑계로 선을 넘지 않게 조심해야한다. 




사람들 사이에 불필요한 벽을 없애주는 것 같아서 나는 술자리가 즐겁다. 머리가 띵해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건 별로지만. 




더 많이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권한다. 나랑 술 마시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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