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줘
아마 우리 집의 극한 유전자와 나의 극단적인 편식에도 불구하고 내 키가 콩나물마냥 자랄 수 있었던 건 우유 덕분일 거다. 야채는 절대 먹지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물 대신 우유를 마셨다. 목이 답답할 때 시원한 우유를 들이부으면 뼛속 하나하나가 차가워지는 게 좋았다. 우유라서 뼈까지 시원해지나 봐. 매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내가 우유급식을 좋아했냐고 묻는다면 의외로 대답은 노다. 제일 싫어했던 게 학교에서 나오는 우유였다. 가끔 교내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되던 제티를 섞어먹는 게 아니라면 질색할 정도로.
이유는 좀 우스울 수 있는데, 나는 우유 감별사다. 내 생각에는 다들 서울우유와 매일우유의 차이를 알 것 같기 때문에 감별사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어쨌든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우유는 원래는 맛있는 우유 GT였지만 이제는 매일우유다. 이 두 종류가 아니라면 난 흰 우유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특히 싫어하는 건 서울우유나 부산우유다. 앞의 두 우유는 마시고 나면 속까지 시원해지며 깔끔하지만 이 우유들은 다르다. 먹고 나면 입이 텁텁하고 사람들이 왜 흰 우유를 싫어하는지 알 것 같은 맛이다.
다른 집에 초대받거나 놀러 갔을 때 우유 줄까, 해서 좋다고 해맑게 웃었다가 서울우유를 한 잔 가득 받은 적이 있다. 좋아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싫어하는 정돈데. 나가서도 밥맛 떨어지는 짓을 하면-햄버거 안의 야채를 골라낸다던가, 음식을 뒤적인다거나-버릇없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교육받았기에 나는 조용히 마셨다. 목을 타고 들어가는 느낌이 끔찍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절대 함부로 우유를 달라고 하지 않는다. 예의를 차려야 하는 곳이라면 아예 사양하고, 친한 친구의 집이라면 조심스럽게 우유의 브랜드를 물어본다. 내 세상은 내가 기준이지만 세상이 나의 기준은 아니니 평범한 일반인들-우유를 가리지 않는-처럼 보이는 수밖에 없다.
자취하는 동안 2리터짜리 수 여섯 개를 몇 개월 동안 마셨다가 된통 잔소리를 들었지만 우유는 900미리짜리를 일주일에 한 두 개를 기본으로 마셨다. 목욕 후에 마시는 단지 우유도, 가끔 생각나는 달달한 초코 우유도 맛있지만 뭐든 오리지널이 제일 맛있는 법이다. 그러니 매일우유가 영원히 우유를 만들어내길 바랄 뿐. 언젠가 사라진다면 이별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작은 귀띔 정도는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