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서 나는 어쩌면 돌연변이일지도 모른다. 언니나 엄마는 애초에 입맛이 둔했고 예민하게 구는 아빠는 확고한 틀이 있었지만 나는 그 아빠보다도 더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였다. 싫어하는 음식이나 변화는 기가 막히게 탐지하는 능력이 있어서 미식가가 내 천직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엄마가 날 특히 까다롭다고 여기는 건 떡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먹어봤을 떡. 빵순이라고 불릴 만큼 종류별로 빵을 끼고 다닌 나는 떡과는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었다. 아빠는 떡이라면 환장을 할 정도이고 언니도 떡을 좋아해서 아침밥 대신 군말 없이 떡을 먹고 다녔다. 하지만 나만은 떡을 싫어해서, 엄마는 아침도 먹지 않고 아침 대용인 떡도 먹지 않는 나를 더 까다롭게 생각했다. 가끔은 아빠나 언니가 떡을 싫어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싶긴 하다.
내가 떡이란 떡을 다 싫어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떡은 불호에 가깝다. 떡과 밥이 있으면 밥을 먹을 거고 떡과 빵이 있으면 빵을 먹을 거니까. 어느 순간에서도 최후의 보루까지 가지 않는다면 절대 선택받지 못할 음식이 바로 떡이다.
물론 꿀떡이나 바람떡, 술떡은 좋아하는 쪽에 가깝다. 좋아는 하는데 먼저 생각나서 찾지는 않으니까 이걸 좋아하나고 해야 할지도 애매하다. 가래떡도 좋아하고 절편도 잘 먹는다. 하지만 떡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다지 기쁜 마음이 들지 않는 걸 보면 분명 좋아하지 않는다.
떡은 일단 쫄깃해서 싫다. 이 얘기를 들은 누군가는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네가 떡의 맛을 모르네, 그 쫄깃함 때문에 먹는 건데! 나는 쫄깃하다는 표현도 억울하다. 쫄깃하다는 건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겠지만 긍정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씹기가 힘든 음식이다. 쩍쩍 달라붙는 게 별로 달갑지가 않다. 쫄깃하다기보다 탄성 있게 질기다. 그 점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떡에서 나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는 좋아하지만 먹을수록 엉겨 붙는 게 싫다. 예를 들면 인절미 같은 음식. 다들 쭉쭉 늘어나는 따끈한 인절미를 좋아하지만 나는 그게 내 숨통을 틀어막는 기분이라서 싫다. 음식은 먹을 때 좋아해서 오는 기쁨이 느껴지길 마련인데 떡은 영 그렇지가 않다. 내가 제대로 씹지 않으면 먹다가 죽을 것 같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처리해야만 하는 의무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떡은 해소할 수 없는 퍽퍽함을 가졌다. 밥에는 국이나 물이 잘 어울리고 빵에는 우유가 어울리듯이, 각자 어울리는 것이 있길 마련인데 나는 아직 그 퍽퍽함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답답하다. 분명 내가 느끼는 답답함이 누군가에게는 떡이 주는 기쁨일 것이다. 아마 나는 오랫동안 그 기쁨을 즐길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나는 떡한테 죽을 것 같다.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그 매끄러운 생김새가 날 죽일 것 같다. 전생에 질식사로 죽은 걸까? 음식에 관해서는 음식을 입에 한가득 채워 넣은 포만감을 사랑하는 나이지만 떡만은 야금야금 베어 먹는다. 맛있지만 무섭다. 스물을 넘은 게 떡을 먹다 죽을 것 같아서 무섭다고 하면 다들 웃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드물게 떡을 사 먹지만 그럴 때마다 무섭다. 이 작은 덩어리가 내 숨통을 죄여 오면 어떡하지. 죽음이 두렵다기보다는 그 느낌이 두려운 것 같다. 꿀꺽, 하고 삼킬 때마다 떡이 저장되는 기분이다. 정작 생선은 목에 커다란 가시가 박혔으면서도 일주일도 안 지나 다시 먹기 시작했는데. 목에 걸리지도 않은 떡이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언젠가 뱃속에 떡이 아주 많이 쌓이게 되면, 나도 숨을 죄여 오는 느낌을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