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나는 현재 서울에 홀로 있다. 원래 나의 집은 경상남도 창원이었다. 서울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경기도 사람들도 모르는, 남쪽 어딘가의 지방. 나는 평생을 그 곳에서 살았다. 그 곳은 봄마다 벚꽃길이 사람들을 반긴다. 커다란 유흥가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고, 재작년에 이사간 우리 집은 조금 떨어져있다. 이사 전까지 나는 그 집에서 13년 정도를 살았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두 집에서 5분 정도의 거리였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마주 보고 있을 정도였다. 또 반대편으로 5분만 걸어가면 커다란 상가가 있고, 학원가가 있었고 10분을 더 걸어가면 시내-우리가 자주 노는 거리는 그렇게들 불렀다-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많아 초중고까지 웬만한 아이들은 모두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한 번 외출할 때 아는 애를 한 명은 만난다, 라는 게 거짓 같은 사실이었다.
나는 줄곧 이 곳을 사랑했지만 이 곳을 떠나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기억의 첫순간부터, 아빠는 항상 서울로 가야한다고 이야기했다. 창원도 작은 도시는 아니었고, 창원에서 부산까지는 차로 30분 정도임에도 서울이 중요하다고 했다. 왜 사람들이 서울에 가는지 아냐고, 견문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해하기도 전부터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고등학교 때, 나는 이 도시의 현실을 직시했다. 하나둘 진로를 정하고 대학을 정해가는 시기였다. 서울 쪽 대학을 갈 거라는 나의 말이 우습고 허황되게 들릴 정도로 모두가 지방대를 이야기했다. 나는 모두가 서울에 가고 싶어할 거라 생각했다.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버린 것이다.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입시에 실패한 기간은 나의 모든 자존심과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시간이었다. 재수를 하는 동안에는 일부러 나를 깎아내리면서 견뎠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견디는 것과 버티는 것인데 오로지 그 두 가지만이 반복됐다. 그 시간이 지나 결국 남들보다 늦으면서도, 빠르게 서울에 오게 됐다.
서울에 오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애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수도권이었다. 부모님을 만나는 것도,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나에게만 어려웠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은 다 이 곳에 없었다. 1학년은 세상에 동떨어져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곳에서도 소중한 것들이 조금씩 생겨나갔다.
매일같이 남산타워를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저 반짝이는 불들을 보는 게 일상이 되기 위해 난 이곳에 온 걸까. 저 불을 보게되서 다행인 걸까.
엄마는 가끔 그런 말을 했다. 고생 안 시키고 엄마가 밥해주고, 챙겨서 학교 보내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들으면 자꾸 눈물이 났다. 그건 엄마가 고생인데, 엄마가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1학년 2학기에 매번 외롭다고, 창원에 가고 싶다고 말을 했었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은 엄마는 우리가 경기도 쪽으로 이사갈까, 하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행복하겠지만 엄마는 외로워질 것이다. 아는 사람도 없는 이 곳에서 무얼 위해 그러겠는가. 그래서 외로운 건 나뿐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보는 남산타워를 위해 나는 외로워지고 있다. 분명 부모님이 원했고 내가 원해서 온 서울임에도 지치고 있다. 이 도시가 언제쯤 사랑스러워질 수 있을까. 소중한 것을 늘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까? 그럼 소중한 것들은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이 답을 찾을 수 있길 기도하는 수밖에.